숨진 청년 이수철씨 원룸엔 이력서 150장만 ‘수북’

<신년 기획> 청년, 오늘④
‘고독사’ 추정 10명의 삶


“더 좋은 스펙을 쌓아가며 살고 싶었습니다. 제 꿈을 위해 노력도 했고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일까요?”

“저는 무섭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긴 20대 취업준비생 김민정(가명)씨의 죽음은 ‘청년 고독사’의 한 단면이다. 그는 외로웠고, 가난했고, 취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울했다.

숨진 뒤에도 김씨를 찾는 이는 없었다. “앞집 베란다에 며칠째 사람 형체가 그대로 서 있다”는 이웃의 신고로 겨우 발견됐다. 집을 정리하는 사흘 동안에도 고인을 찾아온 이는 없었다. 장례는커녕, 그가 남긴 글을 읽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공영장례를 치렀다.

길해용 유품정리업체 스위퍼스 대표는 5일 “10년 전 만해도 유품 정리 현장의 70%가 중장년층 고독사였다면 지금은 절반 이상이 20~30대”라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경찰 사건 기록과 그들의 마지막 흔적, 유품정리사 인터뷰 등을 통해 고독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 10명의 삶을 일부 돌아봤다.

수북이 남겨진 이력서들
서울 강남구 6평짜리 원룸에서 삶을 마감한 30대 이수철(가명)씨의 가장 큰 목표는 취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머물던 방에는 빈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이로 수북한 종이 뭉치가 발견됐는데 생전 작성해 둔 이력서 150여장이었다. 멀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찍은 증명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그 모습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 채 그는 고단하고 짧은 삶을 마감했다.

김새별 유품정리업체 바이오해저드 대표는 “청년 고독사 현장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알아볼 수 있다”며 “이력서, 수험서, 대학 졸업장 등이 많이 발견되는데 대부분 취업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허름한 원룸촌에서 숨진 30대 장한미(가명)씨 방에도 미래를 그렸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장씨는 원하는 직장 취업에 거듭 실패한 후 자격증을 준비했다고 한다. 장씨가 떠난 방에는 작은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괜찮아, 잘 될거야.’

취업난은 경제난으로 이어진다. 이씨의 방에도, 장씨의 방에도 수개월간 연체된 공과금 독촉장이 수두룩했다. 일자리를 못 구해 돈을 벌 수 없었던 청년들의 삶은 궁핍했다. 고시텔을 전전하던 30대 신명진(가명)씨는 공기업 입사를 꿈꾸던 취업준비생으로, 또 다른 이름은 ‘N수생’이었다. 가까스로 대학에 입학해 졸업했지만, 그는 끝내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랍에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의 명찰이 들어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격증 공부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의 죽음은 한 달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한 고독사 현장에 ‘헛된 꿈은 독이다’ ‘아프지 않은 인생은 없다’ 등의 메모가 붙어 있다. 스위퍼스 제공

청년 고독사, 이유는 ‘복합적’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는 취업 실패로 겪는 좌절의 흔적이 흔히 눈에 띄지만, 이를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독사를 연구하는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고독사를 취업난에 국한해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아파서 죽는 청년도 있고, 외로워서 죽는 청년도 있다. 청년의 죽음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길 대표는 고독사 현장에 남겨져 있는 메모 한 장을 사진에 담았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는 소설 ‘데미안’의 구절이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사망한 한유정(가명)씨는 그와 나이가 비슷했던 30대 여성이었다. 고인이 된 한씨가 건네는 메시지처럼 보였다는 게 길 대표의 설명이다.

길 대표는 그를 취업준비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한씨는 번듯한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한씨의 집에선 처방 받은 우울증 약들도 발견됐다. 사망 당시 그는 휴직계를 제출한 상태였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에겐 의지할 가족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건물 관리인이 딸의 사망 소식을 전했지만, 부친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길 대표는 “유품을 인계할 유족조차 없어 가지런히 올려둬야 했다”고 회고했다.

한씨는 주변에 “도와달라”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방에는 직장 동료로 추정되는 이가 남긴 마지막 메모가 있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알았다면 도와줬을 텐데, 정말 미안해.’

청년 고독사의 또 다른 배경 중에는 원만치 않은 가정이 있다. 갓 스무살이던 민지훈(가명)씨는 집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망하기 6개월 전 “유학가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의 부모는 수시로 다투다 결국 이혼했고, 이후 민씨 역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힘들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는 자식의 시신을 수습하러 와서도 서로에게 자식 죽음의 책임을 미루며 다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민씨가 ‘원치 않은 독립’을 한 후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계 공동행동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170만명이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30대가 가장 많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대의 우울증 상담 건수는 2019년 22만3000명에서 2020년 43만5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우울증이 곧 고독사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예방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소한의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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