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이슈분석] 문체부의 ‘깜깜이’ 국립예술단체장 임명, 코심 사태 반복된다

문체부가 산하기관 임원 임면권 독점… 추천위원 공개 등 선정방식 투명해야

문화체육관광부 세종 청사 전경. 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1일 산하기관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코심) 대표로 최정숙 성악가를 임명한 이후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다. 오케스트라 운영과 관련해 최정숙 신임 코심 대표의 경험과 전문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악가로서도 눈에 띄는 프로 무대 경력을 찾기 어렵다. 대신 국회의원 출신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지역구 행사에 출연하는 등 황 장관과의 친분을 보여주는 활동이 인상적이다.

최 신임 대표의 유일한 예술행정 경력인 지역문화진흥원 이사도 지난해 11월 된 것으로 이마저 ‘낙하산’이라는 지적이다. 지역문화진흥원 이사 A씨는 “기존의 지역문화진흥원 이사진이나 직원들 가운데 최 신임대표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문체부 산하기관 이사진에 전문성 없는 인사의 임명은 문체부나 정치권의 낙하산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지난해 11월 이후 지역문화원 이사회가 두 차례 열렸는데, 당시 최 대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임명도 ‘뒷말’

코심의 낙하산 인사 논란 속에 지난해 12월 29일 문체부의 또 다른 산하기관인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임명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황희 문체부 장관의 부인과 사제 관계인 김삼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무용계 관계자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연간 예산만 200억 원 이상을 들여 전통예술 활성화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비록 이사장직이 비상근이라고는 하나 결재권과 인사권을 가지는 등 업무가 매우 많다. 이 때문에 이사장직을 상근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학교 업무도 만만치 않은 한예종 무용원장을 임명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매지 않는 것이 공직자의 처신이라는데, 황희 장관의 최근 문체부 산하 단체장 임명은 갓끈을 고쳐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황희(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18년 지역구인 양천구에서 개최한 송년콘서트에 최정숙(왼쪽) 성악가가 참가했다. 최 성악가는 최근 문체부 산하기관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로 임명됐다. 황희 장관 블로그

사실 코심 등의 ‘낙하산 인사’는 문체부 장관이 대부분의 국립 예술단체 및 산하기관 임원 임면권을 독점하는 데서 기인한다. 정관에 문체부 장관이 임면권자라는 내용만 있을 뿐 이들 단체장(기관장)의 자격기준 및 임명절차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코심 사태 외에도 그동안 국립 예술단체장 인사 참사가 반복해 발생했다.

특히 같은 국립 예술단체면서 국립극장 전속인 경우와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경우가 다르게 예술감독(재단법인의 경우 단장 겸임)을 뽑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립극장 전속인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3개 단체 예술감독의 경우 공모를 통해 선정하되 국립극장장이 위촉한 5~7인의 심사위원회가 최종후보 2명을 선발하면 문체부 장관이 최종 승인하는 방식이다. 이때 공모에서 예술감독 자격은 전문임기제 가급 공무원(2급)에 해당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이에 비해 재단법인으로 독립된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단장과 사실상 국립 예술단체인 코심의 대표이사는 문체부에서 공모 없이 바로 임명하는데, 어떤 자격요건도 없다. 물론 문체부도 공연전통공연예술과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아 최종후보 2명을 선정한 뒤 장관이 최종 승인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전혀 알 수 없다. 즉 문체부가 마음대로 대표를 임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최정숙 신임 코심 대표만 보더라도 업계의 전문가라면 결코 추천할 리 없다는 점에서 황희 장관 친분에 따른 ‘낙하산 인사’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08년 유인촌 장관 시절부터 공모 중단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20년 국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과 최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를 각각 임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

재단법인 국립 예술단체들의 단장 겸 예술감독 임명 과정도 단체마다 다르다. 지난 2020년 10월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김광보 연출가를 임명할 당시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월부터 연출, 극작, 평론, 공연기획 및 배우 등 연극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인사자문단(총 12명)을 구성했다. 이후, 자문위원별 1:1 개별 심층면담을 통해 후보자를 선발하고, 후보자들의 예술성과 행정·소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적으로 김광보 씨를 국립극단 차기 예술감독으로 임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비교해 최정숙 신임 코심 대표의 경우엔 선정 과정에 대한 내용이 일절 없다. 심지어 최 신임대표의 경력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보니 코심에 관한 내용으로 한 문단을 채우고 있을 정도다.

클래식계 관계자는 “연극계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에도 강력하게 저항하는 등 평소 목소리가 크지 않나?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문체부 장관이 마음대로 임명했다가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면서 “이에 비해 클래식계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잘 내지 않기 때문에 이번 코심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2000년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의 경우 재단법인화 된 직후엔 공모를 통해 예술감독이 선발됐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단체장 물갈이’ 논란을 일으켰던 유인촌 문체부 장관 때인 2008년부터 국립 예술단체 단장 공모가 사라졌다. 당시 역량 있는 인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공모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추천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문체부가 현장 전문가들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던 방식이 점차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없이 은밀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바뀌면서 후진적인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근혜 정권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이런 상황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산하기관에 대한 문체부의 화이트리스트는 더욱 심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체부 산하기관의 반복된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 문화예술계에서는 문체부가 임면권을 독점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방식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 국립 예술단체의 정관부터 바꿔 예술감독 선정 방식과 자격 요건을 넣음으로써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를 막자는 의견도 들린다. 특히 예술지원사업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위원과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듯 예술감독 선정 관련 추천위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해외에선 국립 예술기관 이사회가 결정

이와 비교해 해외에서 국립 예술기관의 수장이나 예술감독은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 문화정책을 펴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분명해진다. 한국의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에 해당하는 파리국립오페라 및 파리오페라발레의 예술감독은 두 단체가 속한 파리오페라극장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파리오페라극장 이사회는 안팎에서 추천받은 후보들을 상대로 인터뷰 등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이후 프랑스 문화부의 추인 절차가 필요하지도 않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도 신국립극장의 연극, 오페라, 발레 부문 예술감독은 극장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게다가 해외 국립 예술기관 수장이나 예술감독은 아무리 늦어도 몇 달, 기본적으로 1년 전에는 결정돼 해당 기관의 운영을 익히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물론 해외 예술기관 이사회처럼 기능하려면 현재 한국 예술기관 이사회의 이사 선임부터 낙하산 인사가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립 예술단체의 국장이나 예술기관의 사무국장 등에 문체부 공무원을 내려보내는 일부터 그만둬야 한다. 공모 방식을 택했더라도 사실상 문체부의 명예퇴직 공무원이 내려오는 자리로 굳어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국립 예술단체 관계자는 “문체부가 임원 임면권을 독점하고 이사회 이사 선임에도 관여하는 구조에서 국립 예술단체(기관)가 어떻게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며 “예술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분노해 왔지만 이런 교묘한 화이트리스트의 폐해 역시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