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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걷어낸 수사, 양심 따른 사형 구형” 김태현 사건이 남긴 것

항소심이 말한 ‘절대적 종신형’
“법무부·학계 검토, 국회 결단 내려야”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이 지난해 4월 4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이례적으로 "가석방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성호 기자

서울북부지검 강력범죄전담부는 지난해 4월 9일 서울 도봉경찰서로부터 김태현(25)의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을 송치받아 같은달 26일까지 수사했다. 김태현이 구속 송치될 때 취재진 앞에서 돌연 무릎을 꿇고 “숨을 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고 생중계됐다. 임종필 당시 강력범죄전담부 부장검사는 수사를 준비하는 검사들에게 “피의자가 어떤 사람이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서로 조심하자”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증거로 범행을 확인하고, 절차를 그르쳐 혹여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당부였다.

수사에는 3개 검사실이 투입됐다. 검찰은 애초부터 김태현의 범행 이후 발견, 체포까지의 시간차에 조바심이 있었다. 김태현의 범행은 지난해 3월 23일, 발견된 시점은 이틀 뒤인 25일이었다. 김태현은 검거 이후에도 이전의 자해 때문에 일단 병원으로 옮겼다가 4월 2일 체포됐다.

검찰은 사건 초기 “증거가 없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증거를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했다. 경찰도 초동수사에 만전을 기했고, 포렌식된 김태현과 피해자의 전자기기는 도합 16대에 달했다. 주소 캡쳐, 범행일 이후의 휴가, 상품 배달 가장, 치명상 부위 검색…. 모든 증거가 계획 범죄라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김태현이 3월 23일을 범행일로 고른 것부터가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른 계정으로 게임에 접속해 피해자에게 접근했고, 피해자가 3월 24일과 3월 25일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휴무일 직전 범행을 한다면 향후 범행 발각도 늦어질 것이라는 게 김태현의 생각이었다. 그는 여의치 않을 경우 가족까지 살해하기로 마음먹었고, 경동맥의 정확한 위치를 검색했다. 모든 과정이 디지털 증거와 진술로 뒷받침됐다.

경찰보다 긴 구속기간을 확보한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는 좀더 의미 있는 행적이 떠올랐다고 한다. 피해자가 김태현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 김태현이 피해자에게 “후회할 짓은 하지 말랬는데 안타깝다, 잘 살아봐”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김태현이 범행 이후 피해자의 자택 PC에 접속했고 피해자 소셜미디어에서 본인과 관련된 대화내역을 삭제한 사실도 복원됐다. 안타깝게도 김태현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휴대전화 잠금 패턴을 알아낸 상태였다.

검찰 수사팀은 행적 복원을 진행하는 한편 법률적 평가도 병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김태현의 심신미약 여부였다. 법률적으로 형이 감경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언론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를 내리며 돌연 반성을 쏟아낸 장면을 포함해 범행 전후의 모든 행동이 통합심리분석 대상이 됐다. 분석 결과는 “반사회적 성격은 있으나 정신적인 질병은 없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김태현에게 불리하면 불리했지 양형에 유리할 것은 없게 된 판정이었다.

김태현이 지난해 4월 9일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를 마치고 지난해 4월 27일 김태현을 기소할 때,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기로 뜻을 모았다. 사형이 사문화됐을지언정 법률상 유효하며, 수사하고 기소하는 입장에서는 “모두의 직업적 양심에 반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외관부터 공정을 기하기 위해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 수사였는데, 마지막 기소의 순간에는 단 하나 유족의 감정은 고려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유족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논리로서 고려해야 할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태현은 공판에서 일부 범행이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그가 일면식 없는 피해자의 여동생, 그리고 모친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범행을 이어갔다는 수사 결과를 모두 인정했다. 김태현이 숱한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극단적 인명 경시 범죄였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반성문의 분량이 반성을 의미할 수는 없다. 반성을 하려면 유족이나 고인에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반성이 진정한 것이었다면 유족의 태도 또한 달랐을 것이었다.

김태현 수사팀은 지난 19일 각자의 자리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절대적 종신형’ 판단을 접했다. 직업적 양심을 걸었던 구형에 대해 판결은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선고와 구형이 달랐지만 한편으로는 법원이 검찰의 의견을 완전히 배척한 것도 아니었다.

양형 부당은 상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검사들의 말임을 감안하면, 이번 서울고법의 선고는 최종적인 양형이었다. 검찰과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의 영원한 격리’가 선고된 것이기도 했다. 경륜이 있는 검사들도 “이런 판결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강력 사건이 수사기관에 남기는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TSD)이다. 검사들은 “흉악 범죄를 수사하는 강력 검사들은 일찍 퇴직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평생 간접적으로 접하지도 않을 사건을 완전히 복원하고 또 해부하는 일은 어마어마한 후유증을 남긴다. 누구도 임무를 회피하지는 않지만, 지나고 나서는 “조서를 읽는 일도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임 부장검사는 김태현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그 인상에 대해서는 한사코 말하지 않았다. 법률가로서 증거를 찾고 범행만 복원할 뿐, 감정을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강력 사건이 사회에 남긴 또 한 가지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논의였다. 많은 검사들은 지난 19일 서울고법에서 김태현을 놓고 선언된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사문화된 사형제의 대안’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사형제는 존폐론 양쪽이 모두 강력한 논거를 갖고 있어서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면 대안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다. 해외에선 미국(일부 주), 영국,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말타, 네덜란드 등이 절대적 종신형을 채택하고 있다. 임 부장검사는 “법무부와 학계가 함께 검토하고,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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