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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물신(物神)에 무너지는 공동체 가치


2007년에 제작된 ‘맹산(盲山)’이라는 중국영화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안 되어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 한 여인이 인신매매가 되어 어느 산간벽지에 납치매매혼으로 팔려간다. 이 여인은 자신을 산 남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공범이 되어버린 마을주민 전체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된다. 간신히 자신을 찾아낸 아버지와 경찰들이 찾아오지만, 마을주민들의 격렬한 방해로 경찰은 돌아가고 아버지마저 여인을 산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러자 이 여인이 뒤에서 칼로 남자를 찔러 죽인다. 이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현실을 탈피하려는 여자와 이를 막고 있는 부조리, 그래서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을 보여준다. 공권력마저 물신(物神)과 집단의 광기 앞에서 맥을 못추는 상황은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닌 문명화된 현대에도 오롯이 살아있는 우리의 감추고 싶은 이면인지도 모르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인신매매나 납치매매혼은 당연히 극악무도한 범죄임에도 마을주민들은 이를 방조하고 돕기까지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자기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일이 또는 금전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잘못되었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위에서 이와 비슷한 문제를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된다. 내가 속한 집단이거나 나와 친한 사람이기에, 혹은 나의 이익을 위해 분명히 잘못되고 부당한 것임에도 이를 돕거나 방조한 경험들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당장은 내가 속한 집단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돕고 자신도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은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이 칼을 맞게 되고 자신도 화를 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들이 만연하면 사회 전체가 파멸에 이를 수 있다.

인권, 자유, 정의, 공정,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 인류문명이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쌓아놓은 공동체의 가치들이 있다. 우리가 이런 가치들을 쉽게 놓아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욕심과 이해관계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현장을 목도하고도 우리는 애써 눈을 감는다. 지금 우리가 눈을 감거나 방조하면 위 가치들이 붕괴되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특히 사회적 가치보다는 물적 가치가 신(神)이 된 지 오래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돈만 있으면 학벌도, 명예도, 권위도 살 수 있고, 때로는 재판의 결과도 살 수 있다. 하물며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서도 돈이 당락을 좌우한다.

이런 물신(物神)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부동산값이나 주식, 가상화폐 가치의 등락 확인에만 몰두한 채 공동체의 가치는 애써 외면한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수천 년 동안 어렵게 쌓아놓은 공동체 가치는 서서히 붕괴할 것이다. 불행한 결말을 맞은 ‘맹산(盲山)’ 속 주인공들처럼.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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