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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조 있지만 줄 돈 2500조… 월급 30% 국민연금 낼판”

[인터뷰] 윤석명 전 한국연금학회장
“2055년 국민연금 고갈?
가파른 저출산 반영 안된 낙관적 전망
더 내고 늦게 받게 개혁 서둘러야”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몇 번이나 연금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연금 개혁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진영의 문제가 아닙니다.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연금 문제를 방치하면 우리 미래가 없어요.” 이한결 기자

최근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포털사이트를 달궜다.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2055년에 적립금이 바닥나고, 그해 만 65세가 돼 연금을 수령하게 될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연금학회 회장을 지낸 윤석명(61)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반응은 담담했다. 2055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전망은 예상보다 빠른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저성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차라리 낙관적인 것이고, 실제 기금 소진 시점은 그보다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텍사스 A&M대학교에서 미국의 연금제도와 의료보장제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 가까이 공적연금 제도를 연구하며 일관되게 연금 재정 악화와 개혁의 시급성을 경고해 왔다. 그에게 지속가능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개혁 방안과 대선 후보들의 연금 공약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국민연금 2039년 적자 전환, 2055년 소진’을 내용으로 한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는 2년 전 국회예산정책처 자료가 바탕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2042년 적자, 2057년 고갈’보다 시간표가 당겨졌다.

“2057년은 합계출산율을 1.3명 이상(2030년 1.32, 2060년 1.38)으로 가정해 계산한 소진 시점이었다. 실제 출산율은 2020년 0.84명이었고 지난해 0.7명대, 올해는 0.7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055년에 소진된다는 것도 2019년 신인구 추계를 반영한 것으로 현재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

-자료가 업데이트되면 예상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진다는 건가.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그렇다.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90년생이 사망할 때쯤인 2088년까지 국민연금의 누적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한다. 변화된 지금의 경제 인구 사회 변수를 가정하면 2경이 넘어갈 것이다.”

-2경이라는 숫자가 감이 오지 않는데,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는 어떤가.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이 920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 금액은 수면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주기로 한 미래 지급액 2500조원이 숨어 있다. 현재 부족한 돈이 1500조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독일과 스웨덴, 노르웨이는 연금을 낸 만큼 받는 제도로 바꿨지만 우리는 얼마를 주겠다고 약속한 확정 급여 방식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내는 보험료보다 2배 정도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국민연금 잠재 부채가 하루에 4000억원 넘게 늘고 있다.”


-적립금이 바닥나도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주는 ‘부과 방식’이라는 게 있지 않나. 독일이 그렇게 50년 넘게 버틴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은 그 기간 동안 우리보다 보험료를 많게는 5배, 적게는 2배 이상 부담해 왔다. 미적립 부채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부과 방식으로 갔을 때 2090년 연금보험료가 소득의 32%로 올라간다. 공무원연금은 48.4%, 사학연금은 67.3%다. 지금 보험료가 소득의 9%(직장가입자는 회사와 절반씩 부담)다. 그것도 국민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1%p도 못 올린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미래 세대에게는 하루아침에 소득의 3분의 1을 보험료로 내라고 하겠다는 것인가.”

윤 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핀란드 연금센터가 공개한 자료를 예로 들었다. “합계출산율이 1.35~1.45명인 핀란드는 출산율이 1.0명으로 떨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보험료율이 지금의 24.4%에서 37%로 치솟는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는 출산율이 그보다 더 낮다. 연금보험료를 더 내거나 연금을 대폭 줄여서 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래도 당장 2055년부터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 것 아닌가.

“저에게 공연히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 마케팅을 한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그럼 세금을 걷어서 주면 된다고 한다. 국민연금만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두 제도의 누적 국가 부채가 1100조원이 넘는다. 2020년 한 해에만 국가 부채를 100조원 넘게 늘렸다. 거기에 사학연금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도 있다.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가 재정 적자의 절반을 연금 적자 메우는 데 썼다. 한국은 경제활동 인구 중 40%가 소득세 한 푼 안 내는 나라인데 전부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건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나.

“88년에 도입한 국민연금은 경제성장률이나 인구구조로나 서구사회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 설계된 장밋빛 제도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도입할 때 스웨덴에서는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을 만큼 늦은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연금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보험료 3%를 내면 은퇴 전 소득의 70%(소득대체율 70%)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좋은 제도인 걸 알리고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보험료를 올리려는 복안이었는데 그게 정치 경제학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뭘 했나.

“김영삼정부의 개혁안을 실행에 옮긴 98년 김대중정부 때 개혁이 큰 의미가 있다. 소득대체율을 60%로 10%p 낮추고 연금재정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재정계산제도를 도입해서다. 수급 연령도 점진적으로 65세로 높였다. 2007년 노무현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다시 40%로 20%p 삭감했다. 보험료도 12.9%로 올릴 계획이었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가 노무현정부 연금개혁 백서 최종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 부분에 ‘우리는 절반의 개혁을 했다. 다음 정부가 나머지 절반을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절반을 해낸 정부가 없었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 공무원연금 보험료를 18%로 올리고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로 높였다. 제대로 된 쇄신은 아니어서 개혁이라기보다 개편이었다. 문재인정부는 네 가지 개혁안을 만들었는데 국민연금 부채를 더 늘리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3~4%p 더 내고 연금을 5~10%p 더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연금개혁을 주장하던 제가 더 이상 논의를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공무원연금도 공무원 11만명을 뽑아서 더 악화시켰다. 지금은 이들이 보험료를 내기 때문에 재정 문제가 가려지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곪아터질 수밖에 없다. 연금에 있어서는 역대 최악의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인구가 늘거나 경제가 성장해서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면 국민연금 재정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지 않나.

“2000년 이후 20년 넘게 초저출산 국가였기 때문에 적게 잡아도 연금 수급자를 부양할 800만명 이상의 경제활동인구가 태어나지 못했다. 당장 출산율이 늘어난다고 해도 뒤집을 수 없다. 연금제도가 지속가능하도록 제도 자체를 바꿔놓는 게 최우선이다. 우리 국민연금은 전 세계에서 내는 것과 받는 것이 가장 불균형한 상태다. 우리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들은 20%대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연금 제도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낸 것만큼 받는 제도고, 낸 것만큼 받는다는 건 원금에 경제성장률을 더한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연금 공약은 어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구체적인 공약 없이 나란히 연금개혁을 논의할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5년짜리 정치를 하다 보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려 한다.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집권하면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원칙이나 방향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회적 합의 기구는 회의적이다. 현 정부에도 위원회가 있었지만 허송세월했다.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이름만 빌리는 것에 불과했다.”

-이 후보는 일하는 노인의 연금을 깎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월 35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으면 국민연금이 삭감되는 재직자 노령연금 제도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 공약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연금에도 세금이 붙기 때문에 이중과세의 문제가 있다. OECD도 폐지를 권고하고 같은 제도가 있는 일본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도 복지부가 이 제도를 유지하는 건 그렇게 해서라도 연금 재정을 절감해 보겠다는 고육지책이다. 표 떨어지는 연금 개혁에는 입을 다물고, 표가 되는 삭감 폐지만 공약으로 냈다.”

-윤 후보는 “연금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그랜드플랜을 제시하겠다”며 집권 후로 미뤘다.

“비겁하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선심성 청년지원 공약을 보면 청년세대에 그렇게 애틋한데 정작 그들을 제일 고통스럽게 할 연금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 국가의 미래와 젊은층을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개혁안을 내놓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혼자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우면 누가 당선되든 연금을 표에 이용하거나 정치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합의해서 공동선언하면 되지 않겠나. 이 정도 공약이라도 내놓도록 MZ세대와 사회가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약이 가장 적극적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국민연금 기준으로 통합하는 동일연금제를 내놨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연금 통합은 중요한 문제다. 공무원연금을 예로 들면 국민연금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이 달라서 불공정 논란과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은 2015년 공적연금 일원화로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 제도와 똑같이 바뀌었다. 원래 일본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이 한 푼도 내지 않고 국가가 세금으로 전부 충당하는 제도였다가 1959년 개혁을 통해서 지금 우리처럼 국가와 본인이 반반씩 부담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한국 공무원연금이 1960년에 도입됐으니 사실상 역사가 같은데, 일본은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과 통합된 반면 한국은 국민연금과 멀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쯤에서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자. 외국은 어떻게 개혁했나.

“독일은 2004년 슈뢰더 총리 때 연금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출산율, 기대 여명 증가 속도, 경제성장률 등의 주요 변수에 맞춰 매년 연금을 계산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대 여명이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연금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변화된 수치를 독일 경제에 대입해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판정 나면 연금을 자동으로 깎는다. 정치가 연금에 개입할 여지가 없고, 연금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니 걱정이 없다. 그리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고액 수급자들의 연금을 반 토막 내고 취약계층의 연금은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지속가능한 쪽으로 개선됐다.”

윤 연구위원은 2020년 12월 한·중·일 연금 전문가 세미나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일본은 100년 뒤인 2120년에도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준비금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다. 세미나 끝 무렵에 일본 관리가 한국은 어떻게 일본보다 훨씬 적게 부담하면서 더 많이 받을 수 있냐고 질문했다. 일본은 보험료로 소득의 18.3%를 걷고 소득대체율 50%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득대체율이 우리보다 10%p 높지만 남편과 전업주부 2인 가구가 기준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보험료는 절반만 내고 연금은 더 받는 셈이다. 염장 지르는 거지, 그 관리가 정말 몰라서 질문했을까.”


-결국 해법은 더 내고 덜 받는 수밖에 없나. 실행 가능한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도입한 자동안정장치는 결국 연금 수급액이 깎이는 것이다. 국민 저항을 고려하면 연금을 깎는 것보다 더 내고 지금처럼 받는 게 현실적이다. 보험료를 13~14%로 올리고 핀란드가 도입한 기대 여명 계수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연금으로 받기로 한 총액은 그대로 지급하되 평균 수명이 늘어나 연금을 받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고려해 매월 받는 금액을 차감하는 식이다.”

-연금 받는 시점을 늦추는 ‘더 늦게 받는’ 방안을 얘기하는 학자들도 있던데.

“노르웨이는 연금을 75세부터도 받을 수 있게 연장했고 다른 나라들도 67~69세로 늦추고 있다. 우리는 2033년부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높아지지만 중장기적으로 더 늦춰야 한다. 연금 가입 상한 연령도 함께 조정돼야 한다. 지금 국민연금은 법정 의무 납입 연령이 만 59세까지로 묶여 있다. 만 69세, 만 74세까지 연금을 납입할 수 있다면 받는 연금이 늘어난다.”

-연금을 더 길게 내게 하는 건 정년 연장과 연결되는 것 아닌가.
“일률적으로 정년 연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일을 더 하고 싶은 고령 근로자들은 일본처럼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월급을 적게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래야 젊은층을 고용할 것 아닌가.”

-국민연금을 용돈 연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노후 보장에 충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은 불가능한가.

“지금 43% 수준인 소득대체율은 외국과 비교해 낮지 않다. 다만 40년 납입이 기준인데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이 25년으로 짧기 때문에 실제 소득대체율이 30%가 안 된다. 1970년생의 예상 가입 기간을 추정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19.4년, 소득이 제일 높은 10분위는 33.9년이다. 15년 차이가 난다. 취약계층은 가입 기간이 짧아 연금이 적은데,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를 더 올리면 보험료를 내지 못하거나 아예 가입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연금은 누군가 낸 것보다 많이 받으면 누군가는 적게 받는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혜택이 더 가게 된다.”

-연금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지적인데, 2018년 통계를 보니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2184만명 중 21.3%가 보험료를 내지 않는 납부예외와 장기체납으로 적용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현 정부가 공적연금을 강화한다면서 소득대체율을 높이겠다는 방안이 그래서 후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고 노후 소득을 양극화시키는 것이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중간 이상 고소득층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도 가입한다. 진짜 공적연금 강화는 취약계층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끌어들이고 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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