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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왕립오페라 역사상 첫 동양인 종신단원 된 비결요?”

베이스 고경일, 29~30일 서울시향 ‘레퀴엠’으로 뒤늦은 한국 무대 데뷔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 역사상 첫 동양인 종신단원이 된 베이스 고경일이 지난 24일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고경일은 29~30일 서울시향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 ‘레퀴엠’으로 뒤늦은 한국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한결 기자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독일어권 국가와 북유럽 국가는 가장 안정적인 오페라 제작 환경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오페라극장이 전속 합창단과 전속 솔리스트를 두고 오페라를 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 성악가들이 이들 국가의 오페라극장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합창단원의 경우 정년이 보장되지만 주역을 맡는 전속 솔리스트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다만 전속 솔리스트 가운데 극소수는 종신 단원의 영예를 안기도 한다. 유럽에서 합창단원은 물론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들이 많지만 종신 단원은 단 4명 뿐이다. 독일에서 쾰른 오페라극장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의 소프라노 헬렌 권(권해선), 할레 극장의 베이스 박기현과 함께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의 베이스 고경일(45)이다.

고경일은 지난 2017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의 전속 솔리스트가 된 지 3년 만에 270여 년의 극장 역사상 첫 동양인 종신 단원이 됐다. 그동안 유럽 활동에 집중하느라 고국을 찾지 못했던 고경일이 오는 29~30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 ‘레퀴엠’으로 한국 무대에 데뷔한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카페에서 만난 고경일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겨우 성사된 한국 공연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에서 오페라극장 종신단원 된 네 번째 한국인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현대적인 오페라극장으로 손꼽힌다. 억만장자 선박왕 멕킨리 모엘러가 지은 뒤 2005년 덴마크 정부에 헌납했다. 위키피디아

“유럽에서 커리어가 쌓일수록 한국 무대에도 서고 싶었지만 늘 스케줄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향 공연을 위해 극장장을 찾아가서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제가 같은 시기 저희 극장에 올라가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레포렐로 역을 맡고 있거든요. 고맙게도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님이 극장 측에 다시 한 번 연락을 줬고, 극장에서도 저를 위해 캐스팅 스케줄을 조정해줬습니다.”

다만 고경일은 코로나19 상황 악화에 따른 자가격리 면제 중단으로 한국에 못 올 뻔했다. 다행히 최근 해외 예술가들에 대해 현지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 다시 자가격리 면제를 해 준 덕분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PCR 검사를 받고 다시 보건소에 가서 백신패스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길고 힘들었지만 공연 생각에 설렜다”면서 “게다가 이번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내게 매우 친숙한 레퍼토리”라고 말했다.

고경일은 해외 활약에 비하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다소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악을 시작한 데다 명문대 출신이 아닌 탓도 있다. 그는 한세대 졸업 이후 한예종 전문사 과정을 거쳐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 오페라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았다. 2005년 프랑스 마르몽드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프랑스에 자리잡은 그는 마씨 오페라극장을 시작으로 툴루즈, 마르세유, 브장송 등 여러 지역의 오페라 프로덕션에 출연했다.

베이스 고경일(오른쪽)이 지난 2021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의 '파우스트'에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

“교회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으로부터 제 목소리가 성악에 맞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마 아버지 사업이 IMF 시절 망하지 않았다면 그때 성악가를 꿈꾸진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 공부 못했던 제게 성악만이 희망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서야 성악을 제대로 배운 뒤 KBS 신인 콩쿠르 우승 등 국내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습니다. 2002년 유럽 유학을 떠나고 나서 얼마 안됐을 때 권위있는 이탈리아 베르디 콩쿠르에서 베이스 1등으로 파이널리스트에 올라갔는데요. 최종적으로 수상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자신감이 생기면서 유럽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청력 상실했다가 수술 이후 기적적으로 회복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가 없는 프랑스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점점 독일 무대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2008년 명문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의 영 아티스트 오디션 합격과 함께 생활터전을 독일로 옮겼다. 하지만 2010년 왼쪽 귀가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되면서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7시간의 수술과 6개월간의 회복 기간 이후 그는 청력을 되찾았다.

“수술이 실패하면 청력만이 아니라 미각과 후각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한지 얼마 안돼 신종 플루까지 걸리는 등 만신창이 상태였지만 6개월이 지나자 기적처럼 다시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에이전트에게 시골의 작은 극장이라도 좋으니 무대에만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오디션을 통해 중소 도시 오페라극장의 주역으로 잇따라 무대에 섰는데요. 이때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섭렵한 덕분에 다시 함부르크, 다름슈타트, 데사우 등 메이저 오페라극장의 주역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베이스 고경일(왼쪽)이 2018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의 '일 트로바토레'에 출연하고 있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

삶의 고비를 넘긴 그가 다시 한번 치열하게 생활할 때 만난 아내(소프라노 김지혜)는 안정감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선물해 줬다. 2016년 덴마크 국립 방송국 합창단 단원이 된 아내의 권유로 그가 이듬해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의 베이스 오디션에 응시해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전속 솔리스트로서 ‘일 트로바토레’ ‘라보엠’ ‘트리스탄과 이졸데’ ‘돈조바니’ ‘파우스트’ 등 다양한 오페라에 출연한 그는 빼어난 기량으로 관객이 사랑하는 극장 최고 스타 중 한 명이 됐다. 덕분에 입단 3년만에 극장 역사상 첫 동양인 종신단원이 됐다. 현재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는 20명이며, 종신단원은 8명이다. 종신단원이 된 이후 그는 연간 3~4편의 작품에 30회 정도 출연한다.

“독일어권이나 북유럽 오페라극장이 전속 솔리스트를 뽑을 때 대체로 성악가 에이전시에 연락해 지원자를 추천받습니다. 그런데, 해당 오페라극장과 교류가 없는 에이전시의 경우 솔리스트 오디션 정보를 알기 어렵습니다. 저도 에이전시가 아니라 코펜하겐에서 일하는 아내 덕분에 오디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디션 합격 뒤 첫 시즌엔 1년 계약을 했는데, 저를 마음에 들어하는 극장이 두 번째 계약할 때는 2년을 제시하더라구요. 그리고 두 번째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아예 종신단원을 제안했습니다. 한국 성악가들이 많이 활동하는 독일 극장과 달리 북유럽 극장은 여전히 동양인에게 벽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극장장의 종신단원 계약 제안을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바로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소통능력으로 신뢰 얻어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1700석)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현대적인 오페라극장으로 손꼽힌다. 억만장자 선박왕 멕킨리 모엘러가 25억 크로네(약 5000억원)를 투자해 지은 뒤 2005년 덴마크 정부에 헌납했다. 1748년 설립된 기존의 왕립 극장(1500석)에서는 발레와 바로크 오페라가 주로 공연되고 그랜드 오페라는 왕립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형태로 운영된다. 고경일이 덴마크 문화예술의 자존심인 덴마크 왕립 오페라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출신 종신단원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베이스 고경일은 지난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성악가로서 힘들게 걸어온 과정과 한국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한결 기자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은 그동안 종신은커녕 전속 솔리스트로 아시아 출신과 계약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보수적이라는 뜻이죠. 저도 오디션을 볼 때 다른 성악가들보다 훨씬 많은 곡을 불러야 했습니다. 동양인이 극장의 얼굴인 전속 솔리스트로서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바로 가지지 못했던 거죠. 그렇지만 제가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연출가, 지휘자, 동료들과의 좋은 소통능력을 보여주자 평생을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활동한 그는 성실함과 실력만으로 메이저 오페라극장 종신 단원이 됐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더 있을까. 그는 “성악가의 길을 택한 이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솔직히 한국에서 명문대를 나왔으면 이토록 치열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면서 “내 실력만 믿고 묵묵히 길을 걸어온 게 여기까지 도달했다. 다만 덴마크 왕립 오페라극장 종신단원으로서 경력이 쌓이면 한국을 비롯해 덴마크 이외의 나라에서 공연을 좀 더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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