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잔혹동화’ 지금 개 번식장은 ‘포메라니안’ 철

[그날 번식장의 개들은] ① 포메라니안 구조 동행기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에서 발견된 포메라니안. 카라 제공.

‘개 번식장’이라니 말만 들어도 섬뜩합니다. 더 기괴한 건 번식장 운영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길에 다니는 아무 똥개나 잡아서 수컷, 암컷을 교배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마치 해외 명품브랜드 패션쇼처럼 해마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품종을 집중적으로 번식시킵니다.

2020년 tvN ‘삼시 세끼’에 출연한 강아지 ‘산체’ 기억하시나요? 산체의 인기 때문에 한때 장모치와와 입양 문의가 펫숍에 빗발쳤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JTBC ‘펫키지’에 출연한 가수 태연의 반려견 ‘제로’가 유명해지면서 실버토이푸들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빠르게 바뀌는 인기 품종, 그에 맞춰 전시되는 펫숍의 강아지들. 이 강아지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람들이 원하는 때에 맞춰 펫숍 유리창 안에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게 된 것일까요?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① 개 번식장 구조 동행기 ② 유기견 보호소로 ‘위장’하는 펫숍 ③ 벌금 ‘푼돈’ 취급하는 번식장 주인들, 세 편에 걸쳐 전합니다.

아직 짙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 사무실 앞은 분주했습니다. 갓길에 세워진 대형 SUV 3대는 이날 있을 개 번식장 구조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구조 활동에 필요한 케이지, 담요, 사료 등을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세워진 낡은 스타렉스는 이곳저곳 상처도 많았고 뒤 범퍼는 잔뜩 찌그러졌지만 출발을 알리는 시동 소리만큼은 장엄했습니다. 지난 24일 카라의 개 번식장 구조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에서 개들이 앉아있는 모습. 카라 제공.

주변이 온통 포메라니안…다른 종은 왜 없나요?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 근처에서 발견된 포메라니안들. 나경연 기자.

“멍!멍!” 2시간을 달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인기척이 들리자 출입문 앞에서 포메라니안 두 마리가 매섭게 짖었습니다. 이 포메라니안들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이빨이 거의 없었고, 얼키설키 엉킨 털과 오물이 잔뜩 묻은 외양으로 볼 때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얼핏 봐도 피부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집 뒤편에는 포메라니안 세 마리가 닭장에 갇힌 채 짖고 있었습니다. 이 포메라니안들 역시 상태는 좋지 않았고 닭장 바닥에는 대소변이 가득해 강아지들이 돌아다닐 때마다 바닥은 더욱 지저분해졌습니다. 가자마자 발견한 5마리의 포메라니안. 다른 품종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곳은 ‘포메라니안 전문 번식장’이 확실했습니다. 활동가는 “요새 번식장은 포메라니안 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에서 환기팬을 돌려 배설물 냄새를 빼내고 있다. 나경연 기자.

주변 시설을 천천히 살펴보던 중 비닐하우스 위에 달린 ‘팬’이 눈에 띄었습니다. 활동가에 따르면 비닐하우스와 환기팬, 이 두 가지가 보이면 번식장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몇십 마리의 개가 비좁은 뜬장에서 길러지는 동안 발생하는 배설물 등의 냄새를 빼기 위해서는 팬이 필수라는 것입니다.

뜬장은 기둥 4개로 땅을 지지하게 만들어 바닥 구멍으로 배설물을 내보내는 구조로 만들어진 철장을 말합니다. 번식장의 개들은 발정제·자궁수축제를 맞으며 오로지 출산만을 위해 존재하기에 소유주들은 개들의 위생이나 건강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번식장의 악취는 환기팬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배째라’ 번식장 주인…“공무원도 못 들어가요”
지난 24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 개 번식장 앞에서 남양주시 공무원이 카라 활동가들에게 번식장 주인과의 통화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경연 기자.

“저희도 허락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카라의 신고를 받고 남양주시에서 공무원이 점검을 나왔지만 번식장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번식장도 엄연히 개인이 소유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법기관이 아니면 수사 권한이 없고 함부로 들어가면 가택 침입에 해당합니다. 번식장이 정식 동물 생산업체로 등록되지 않은 불법 시설이라도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유주의 허락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번식장 주인은 공무원과의 통화에서 “내 시설인데 왜 간섭하냐”“오늘 밤에 들어간다”“내일 오전에 도착한다” 등 계속 말을 바꿔가며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2018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반려동물 생산업체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했습니다. 생산 시설 관리에 필요한 최소인력과 출산 주기 관리, 거리 확보 등 반려동물이 생활하는데 위생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여러 준수사항을 마련했습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연 1회 이상 정기 점검을 해야 하고 미등록·무허가 영업자에겐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제보 없이 지자체가 모든 번식장을 점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기다리면 돼요.” 활동가들은 주인의 뻔뻔한 행태에도 태연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많이 겪어봤다는 듯 바로 ‘뻗치기’ 태세로 들어갔습니다.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결국엔 주인을 만나게 된다는 것. 수없이 많은 구조 활동으로 배운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었습니다.

소유권 포기 각서 쓴 주인…“부끄러우니 밤에 데려가라”
“소란스러우면 부끄러우니 밤에 와서 데려가라.” 번식장을 찾아간 뒤 이틀째 되는 날, 주인은 백기를 들었습니다. 번식장 운영을 모두 인정하고 ‘소유권 포기 각서’도 작성했습니다. 그는 밝은 낮보다는 밤에 와서 개들을 조용히 데려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락사할 것이라면 데려갈 수 없다”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 내부 모습. 카라 제공.

어둠이 내려앉은 밤, 활동가들이 들어간 번식장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뜬장과 뜬장 입구를 가리고 있는 분홍색 담요는 마치 홍등가를 연상케 했습니다. 한두 걸음만 가도 벽에 막히는 좁은 공간에 많게는 3마리까지 몸을 부딪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바닥은 오물 자국으로 가득해 얼룩덜룩했고 개들은 무기력하게 누워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손을 뻗어 안아도 아무런 저항 없이 품 안에 축 늘어졌습니다. 케이지 안에 들어가 차량 뒤에 실리는 동안에도 개들은 가만히 숨죽이며 겁먹은 눈동자만 굴렸습니다.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 내부 모습. 카라 제공.

이번 구조는 주인의 소유권 포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만약 학대 혐의를 받는 주인이 소유권 포기를 하지 않을 때는 지자체가 동물과 소유주를 긴급 격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3일이 지나면 소유주에게 동물을 돌려줘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학대받은 동물들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보내지기도 합니다. 번식장 개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편인데 주인이 모든 치료비를 내야 다시 개들을 데려갈 수 있습니다.

번식장 개들은 좁고 더러운 곳에 몇십 마리가 함께 지내기 때문에 홍역이나 전염병에 취약하고 쓸개골탈골, 심장사상충, 유선 종양 등의 질병을 앓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심한 경우 한 마리 당 1000만원의 치료비가 나오기도 하는데 치료비를 내고 개들을 다시 데려가는 주인은 없습니다. 주인이 치료비를 내지 않고 소유권을 포기하면 카라 같은 동물권 보호 단체들이 대신 치료비를 내고 개들을 데려와 돌보게 됩니다.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에서 웅크리고 있던 포메라니안(왼쪽). 번식장에서 구조돼 카라가 준비한 케이지로 옮겨진 포메라니안들. 카라 제공.

뜬장 안에 갇혀 학대받던 개들은 이날 밤 활동가들의 품에 안겨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현재 구조된 16마리의 개들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카라 더봄센터에서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개들 모두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피부병 등 각종 질병을 알고 있어 치료가 급한 상황입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 젖은 보기 흉할 정도로 늘어진 강아지도 있고 구강질환이 심해 이빨이 절반 이상 뽑힌 강아지도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말합니다. 구조된 개들의 삶의 여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구조된 개들이 막 시작하는 새로운 여정에는 지금까지의 ‘지옥’을 잊게 해줄, 더 나은 꽃길만 있기를 바랍니다.

남양주=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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