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상식] 다윗의 불륜

나약한 인간 의지로 유부녀 겁탈했지만…하나님 은혜의 불꽃 재점화, 뼈아픈 눈물과 탄식

이정미 박사

“4세기 말 동로마 제국 황제 아르카디우스(Arcadius:378~408)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자 탁월한 설교자로서 ‘황금의 입’이라고 불린 크리소스톰(Chrysostom:347~407)에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황제는 신하들에게 말하길 주교에게 복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고 명했다. 몇몇 사람은 ‘그를 사막으로 추방하소서’ ‘감옥에 가두소서’ 또는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하소서’ 아예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리소서’라는 제안을 주저없이 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교활한 신하가 말했다. ‘당신들은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게요. 그는 감옥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요, 사막에선 하나님과 더욱 가깝게 지낼 것이요, 또한 그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을 빼앗는 것일 뿐이지요. 만약 그를 죽인다면 그는 바로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황제여! 진정, 복수하길 원하신다면 그가 죄를 짓도록 만드십시오. 그는 세상에서 죄 외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A. W. Pink-

이민족과의 전투가 빈번하던 때 다윗은 휘하장수들과 야전을 누비던 뛰어난 사령관이었다.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에도 전장의 선봉에 서서 적들을 물리쳤다. 그는 전략가인 동시에 수금(킨노르)과 시(노래)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자신의 부하용사들을 진심으로 아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다. 다윗이 굳이 참전하지 않아도 그의 군대는 승승장구하면서 주변국들을 섭렵해 갔다. 이제 그는 안락한 왕궁에서 신하들이 전하는 승전보의 기쁨에 취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우기가 지나고 봄이 되어 다윗은 암몬 족속에 대한 군사원정을 재개했다. 그는 요압을 지휘관으로 삼아 수도 랍바(Rabbah)를 점령하도록 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삼하 11:1) 그는 모처럼 느긋하고 나른한 오후에 달콤한 오수를 즐겼을 것이다.

유혹의 덫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저녁 무렵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궁궐 옥상에선 하늘의 화려한 석양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곳엔 백성이 사는 가옥의 평평한 지붕들이 보였다. 원근 거리의 굴뚝에서 저녁을 짓는 희뿌연 연기도 피어올랐다. 그 때 왕의 눈에 한 여인의 벗은 몸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여염집 마당에서 목욕하는 그 여인의 모습은 마치 그녀에게만 밝은 조명이 비추는 것처럼 그에게 점점 뚜렷이 각인됐다. 심히 아름다웠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했다. 다녀온 신하가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삼하 11:3)라고 보고했다. 그는 사람을 보내 그녀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했다.

권력에 취한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임을 확인하고도 자신의 욕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난 날 그는 사울의 옷자락을 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찔렸다.(삼상 24:5) 그는 한때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리니…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중략)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자를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01:2~4)라고 읊었던 시인이었다. 그런 자가 유부녀를 겁탈하기로 작정했다. 인간의 ‘의지’(will)가 이렇게 나약하다.

성경은 사건의 전말을 압축해 서술한다. 밧세바는 곧 집으로 되돌아갔으며 얼마 후 임신했다는 소식을 왕에게 통지했다. 다윗은 즉시 전령을 보내 우리아 장군을 호출했다. 그는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비루한 계획을 짰다. 왕은 전선에서 돌아온 장군에게 전황을 묻고 노고를 치하했다. 그런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며칠간 특별한 휴가를 허락했다. 왕의 음식물도 뒤따랐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인즉 언약궤는 물론 상관과 그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치고 밤을 (지)새우는데 어찌 홀로 편히 쉴 수 있겠냐는 것이다. 다윗은 처음부터 우리아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근데 그를 이용해 자신의 죄를 숨기고자 한 (그의) 인간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극단적 방법을 택하였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14~15)

다윗의 원대로 우리아는 전사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우리아의 죽음에 대해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삼하 11:25)고 태연하게 반응하면서 자신과 공모한 요압을 독려했다. 간음이 살인을 낳았듯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았다. 그는 장례를 마치고 미망인 밧세바를 후궁으로 삼았다. 아들도 태어났다.

다윗은 과연 행복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 약 1년쯤 지난 후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한담을 늘어놓듯 이야기한다. 내용인즉 양과 소가 매우 많아 전혀 부족함 없는 부자(다윗)가 어떤 행인(정욕)을 대접하기 위해 그의 소유물 대신 이웃의 가난한 자(우리아)가 자식처럼 아끼는 작은 암양새끼(밧세바)를 빼앗아 접대했다는 것이다. 다윗은 즉각 분노에 가득 차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 12:5)고 정죄했다. 이에 나단 선지자는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불순종해 타락한 왕의 죄악들을 낱낱이 파헤쳤다. 뿐만 아니라 이제 왕의 집안에는 칼과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백주에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고 당신이 낳은 아이도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윗의 영혼 깊숙이 꺼질 듯했던 하나님 은혜의 불꽃이 다시 점화되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고백했다. 그때의 뼈아픈 눈물과 탄식을 반주삼아 노래로 쏟아낸 것이 시편 51편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대개 우슬초는 회개와 자복, 정결과 겸손한 마음가짐을 뜻한다. 이른바 영적 나병을 가진 죄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보혈을 덧입어 죄 사함의 은총과 함께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이정미 객원기자 hesedia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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