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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생의 마지막, 엔딩 플래너가 필요하다

송길원·청란교회 목사, 동서대학교 석좌교수(가족생태학), 하이패밀리 대표


#죽음 풍경 하나: 엔딩파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 책은 미치 앨봄(Mitch Albom)이 그의 스승과 나눈 인생 이야기다. 스승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책은 두 사람이 화요일마다 나누었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자기연민, 후회, 죽음, 가족, 용서… 그리고 작별 인사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던 모리 교수는 어느 날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조문객들이 관 위에 꽃을 놓으며 작별 인사를 해도 죽은 친구는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모리 교수는 결심한다. 자신이 지각이 있을 때 장례식을 미리 해야겠다고. 그는 정든 이들을 불렀고 사람들은 눈물로 포옹했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 나도 고교 시절 선생님의 엔딩 파티를 주도해 보면서 알았다. 엔딩파티(生前式)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였다. 영락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닮았다. 내가 경험한 가장 멋진 풍경이었다.

#죽음 풍경 둘: 무덤 친구(墓友)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卓吾, 본명 이지·李贄)는 ‘분서(焚書)’에서 친구를 여덟 종류로 구분했다. 길을 오가며 만난 시정지교(市井之敎), 함께 어울려 노는 오유지교(遨遊之敎), 밥과 술을 같이 즐기는 주식지교(酒食之敎),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지교(座談之敎), 글을 읽고 논하는 문묵지교(文墨之敎), 내 몸처럼 가깝고 친한 골육지교(骨肉之敎),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심담지교(心膽之敎), 죽음까지 함께할 만한 생사지교(生死之敎) 등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무덤에 들어갈 사람끼리의 연대인 무덤 친구(墓友, 하카토모)가 생겨났다. 이들은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무덤친구(はかとも)’는 남남이 함께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맺는 친구관계를 이른다.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교우관계의 한 형태다. 사후(死後)에 공동묘지나 추모목에 함께 묻히게 된다.

자녀가 없거나 사별했거나 이혼한 이들, 평생 독신인 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다. 사후 관리를 맡아줄 가족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서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다. 외로움과 고독을 끌어안아 준다.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누며 지구촌에서 ‘마지막 친구’가 된다.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가 붕괴된 지연 중심 사회의 풍경이다.

#죽음 풍경 셋: 엔딩 서포트
이번에는 ‘엔딩 서포트(ending support)’다. 가진 돈이 많지 않고 찾아오는 가족도 없는 쓸쓸한 독거노인의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해 등장한 복지 혜택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이 홀로 사는 일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자체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사망하면 장례식을 치러준다. 남은 살림살이를 정리해주며 행정관청에 사망 신고까지 대행해준다. 비용은 최소만 받는다. 일본 지자체가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행정 복지제도다. 일본의 나고야시가 시작했다. 사회 안전망의 구축인 셈이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통계청 전망에 의하면 2070년 대한민국 총인구는 3766만명이며 노인 인구 비율은 46.4%다. 2017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 비중 7%)를 맞이한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14%)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85세를 훌쩍 뛰어넘었다. 삶이 길어진 만큼 누구나 1인 가구로 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노인 돌봄은 모두의 숙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노년 세대의 고민은 한가지로 귀결된다. ‘과연 나는 존엄하게 품격을 지키며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 부분을 도와주는 서포터가 엔딩 플래너다. 엔딩플래너는 장례를 치러주는 장례지도사와 사뭇 다르다. 장례지도사는 장례를 치러주는 것으로 끝이다. 엔딩 플래너는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정겨운 길벗이자 상담자가 된다. 때로 인생 코치가 되어 최고의 인생을 살도록 돕는다. 장례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편의 제공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떠남을 주관하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까지도 함께한다. 고인과 남은 유가족을 사랑의 기억으로 묶어준다.

엔딩 플래너는 의학전문기자 홍혜걸의 유튜브 ‘의학채널 비온뒤’를 통해 새로운 창직(創職)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1년 2학기의 과정은 인문학으로 출발해 생사학과 장례를 다룬다. 민간 자격증 코스로 운영된다. 이들이 지자체에 투입되어 노인 돌봄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게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닐까.

결혼에 웨딩 플래너가 필요하듯 죽음(임종)에는 엔딩 플래너가 필요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복지는 생활복지가 아니라 임종 복지라는 것을. 존엄사 역시 임종 돌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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