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나누고 빨래하고… 농촌교회, 어르신 섬김에 협업

섬김의 마중물 된 강중침 RCP 지원
지자체도 교회 통해 어르신 복지 나서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 김동현 목사(오른쪽)와 와초침례교회 임영식 목사가 9일 와초교회에서 지역 섬김에 나서게 된 계기와 사역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제성교회는 지역 노인에게 반찬을 나누고, 와초교회는 대형 빨래를 대신해 주고 있다. 익산=서윤경 기자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 김동현 목사가 4분 57초 짜리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98세 김득중 할아버지는 하얀색 셔츠에 베이지색 조끼를 덧대 입고, 같은 색 중절모까지 쓴 말쑥한 옷차림으로 마당 의자에 앉아 창을 했다. 춘향가 중 ‘쑥대머리’다.

“보고 지고 보고 지고 한양낭군 보고 지고”하던 김 할아버지가 노래를 멈추더니 “잘 나도 내 낭군, 못 나도 내 낭군이여”라고 아니리(독백)를 덧붙인다.

제성교회 정종숙(66) 권사는 김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장단을 맞춰주고, 조희(58) 권사는 영상을 찍으며 추임새를 넣는다. 두 권사는 반찬 도시락을 들고 일주일에 한 번 김 할아버지를 포함해 웅포면에 있는 10여 가정을 찾는다.

98세 김득중 할아버지가 일주일치 반찬을 주려고 온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 성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창을 하고 있다. 제성침례교회 제공

제성교회는 지난해 설립 55주년을 맞으면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로 했다. 웅포면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어르신 30여명에게 일주일치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는 ‘든든한 도시락’ 사역이다. 세로로 긴 웅포면을 3개 구역으로 나눴고 2인 1조씩 3개 팀이 배정된 구역을 찾는다.

30여명의 일주일치 반찬이라 만드는 양은 상당하다. 주일학교에 참석하는 어린이까지 합쳐야 교인 수 26명뿐인 작은 농촌 교회가 하기엔 버거울 법도 했다. 성도들도 처음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김 목사 자녀를 비롯해 네 명의 초․중학교 학생을 제외하면 김 목사 부부가 막내인 이 곳 교회 성도의 평균 연령은 70세가 넘는다.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는 매주 화요일이면 일주일치 반찬을 만들어 웅포면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왼쪽). 외부 활동이 없는 어르신들은 교회 성도들의 방문을 반긴다. 제성침례교회 제공

교회에서 8㎞ 떨어진 가장 먼 구역을 찾아가는 김병환(70) 장로는 “교회 재정도 넉넉하지 않아 사역이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럼에도 다들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제성교회 성도들은 반찬을 건네며 노인들에게 색다른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빨래다.
김 목사는 “이불 등 큰 빨래는 젊은 사람들도 하기 버거운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반찬을 드릴 때 빨랫감 있냐고 물어보고 받아 온다”고 말했다.

그렇게 받은 빨래를 김 목사가 가져가는 곳이 있다. 옆 동네 와초리에 있는 와초침례교회(임영식 목사)다.

전북 익산 와초침례교회는 지난 여름 대형 빨래를 할 수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구비해 빨래 사역에 나섰다(왼쪽).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사역자들은 빨랫감을 수거하고, 세탁해 집으로 배달해 준다. 와초침례교회 제공

와초교회는 지난 여름 대형 빨래를 할 수 있는 25㎏, 21㎏짜리 세탁기와 21㎏, 17㎏짜리 건조기를 각 1대씩 샀다. 교회 식당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설치하려고 수도 공사도 했다. 식당은 150여 가구, 3개 마을, 와초리 주민이면 누구나 빨랫감을 가져와 빨래할 수 있는 마을 빨래방이 됐다. 빨래방 이름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와초 사랑의 빨래방’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이 전화를 주면 교회에서 직접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한 뒤 배달까지 해 준다. 사역자들은 4개 구역으로 나눠 일주일에 한 구역씩 찾아가 빨랫감을 가져 온다. 한 달이 4주니,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셈이다. 교회는 어르신들이 교회 번호를 잊지 않도록 냉장고에 붙이는 광고지도 만들어 제공했다. 1호 빨래방 고객은 이 교회 손금순(91) 집사다.

빨래방은 와초교회 성도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와초리 주민은 물론 제성교회 성도도 김 목사를 통해 빨래방을 이용한다. 인근 지역의 개척교회‧미자립교회 목회자들도 빨랫감을 들고 와초교회를 찾는다.

전북 익산 와초침례교회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구비한 빨래방을 마련했다. 주민들에게 빨래방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8월 현판식도 열었다. 와초침례교회 제공

뜻밖의 선물도 받았다. 주민들에게 빨래방을 열었다는 걸 알리려고 지난 8월 현판식을 열었는데 지역구 시의원과 면장, 성당면 발전협의회장 등이 양손에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들고 찾았다. 1년을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

제성교회 반찬사역의 대상인 어르신들이 빨래방 사역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와초교회 성도 중 80세 이상의 어르신 두 명도 매주 제성교회로부터 반찬을 받고 있다.

두 농촌교회가 지역 어르신을 함께 섬길 수 있게 된 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서울 강남중앙침례교회(강중침․최병락 목사)가 지난해 시작한 ‘리칭 아웃 처치 프로젝트(RCP)’를 통해서다. 지역교회에 500만원을 지원하면 그 재정으로 섬김과 구제 사역에 100% 사용해 지역사회에서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하자는 게 RCP 취지다.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지난 7월 지역 섬김에 나서는 21개 교회에 500만원씩 지원하는 ‘리칭아웃 처치 프로젝트’ 협약식을 진행한 뒤 조를 나눠 지원받는 교회 목회자들의 사역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와초교회 목사와 오른쪽 네 번째 김동현 제성교회 목사. 국민일보DB

제성교회는 반찬사역 1개월째가 됐을 때 강중침의 RCP 소식을 듣고 지원서를 냈고, 지원금을 받았다. 사역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올해도 지원 대상이 됐다. 와초교회는 올해 처음 지원금을 받았다. 김 목사와 임 목사는 지난 7월 두 번째 RCP 지원을 받게 된 교회들의 모임에서 만났다. 같은 교단인데다 가까운 지역에 있어 평소 친분이 있던 두 목사는 이날 모임에서 지역사회와 어르신을 위한 각자의 사역을 함께 하기로 했다.

김 목사는 “강중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협업”이라며 “더 많은 교회들이 농촌에 있는 교회를 통해 농촌사역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목사도 “강중침의 지원은 우리 사역의 마중물이 됐다. 성도들에게 사역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는데 훨씬 수월했다”고 전했다.

최근 제성교회는 새로운 사역에도 나섰다. 지난해 서울의 한 성도가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20년 된 제성교회 차량을 보고 선물한 SUV 차량을 ‘행복콜 버스’로 변신시켰다.

김 목사는 “한 번은 달리는 내 차를 마을 어르신이 세웠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며 태워달라고 했다”며 “차량을 선물 받으니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는 지난해 서울의 한 성도가 선물한 SUV 차량을 ‘행복콜 버스’로 변신시켰다. 사진은 김동현 목사가 성도의 비료 구입을 위해 차량을 운행한 뒤 구매한 비료를 내려주는 모습. 제성침례교회 제공

실제 익산역에서 교회가 있는 제성리까지는 26㎞나 떨어져 있는데다 버스도 하루 세 번 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김경순(72) 권사는 “읍내에서 비료를 사서 가져와야 할 때면 난감했는데 이번엔 행복콜을 이용했다”며 미소 지었다.

두 교회의 적극적인 섬김은 지역 사회에도 변화를 줬다. 웅포면은 제성교회가 도시락을 만들 수 있는 식당을 연결해 줬고 복지사역을 할 때면 제성교회에 협조를 구했다.
와초교회도 성당면과 함께 빨래 사역의 범위를 면 단위로 확장하기로 했다. 익산시도 지원을 약속했다.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 김동현 목사(오른쪽)와 와초침례교회 임영식 목사가 9일 와초교회에서 지역 섬김에 나서게 된 계기와 사역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제성교회는 지역 노인에게 반찬을 나누고, 와초교회는 대형 빨래를 대신해 주고 있다. 익산=서윤경 기자

김 목사는 “지자체와의 협업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우리는 될 때까지 두드렸다. 쉽지는 않았지만 교회가 먼저 지역을 섬기며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지자체도 알아줬다”고 설명했다.

임 목사도 “지자체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제성교회가 그렇게 했다”며 “사역을 하다 보면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지역 섬김은 뜻밖의 결실도 맺었다.
외부 활동이 거의 없는 노인들은 반찬과 빨래를 위해 집에 오는 성도들을 반겼다. 챙겨둔 호박 파 등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교회 문턱에도 가지 않았던 김 할아버지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성도들을 기다렸고 창을 부르며 기쁨을 전했다.

전북 익산 제성침례교회 김동현 목사(왼쪽)가 웅포면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노인에게 반찬을 나눠주기 전 봉사에 나서는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제성침례교회 제공

성도들도 달라졌다. 자신들을 반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위로를 받았다.
김 장로는 “지난 여름 음식이 상할 게 우려돼 2주간 도시락 배달을 중단했다가 재개했을 때는 성도도, 어르신도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면서 “어르신들도 우리를 기다리지만, 우리도 기다린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할 때까지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도로도 이어졌다.
김 목사는 “교회가 전도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냐는 타박도 들었다. 그런데 처음엔 거부감을 갖던 사람들도 도시락을 전하니 교회와 성도들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하게 됐다”며 “이런 게 바로 전도 아닐까 싶다”고 했다.

냉장고에 붙이는 빨래방 광고지는 전도지가 됐다.
임 목사는 “사역은 은사”라며 “누군가의 강요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했더니 자연스럽게 전도가 됐다”고 말했다.

익산=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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