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자고 할 걸…” 이태원 생존자들 극단적 위기

참사서 살아남은 고교생 극단 선택
한 생존자는 가족에게도 언급 피해
“자립 존중하되, 생존자 상태 잘 봐야”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분향소에는 유족이 동의 의사를 밝힌 희생자 77명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안치됐다. 공동취재

이태원 참사 생존자였던 고등학생 A군이 지난 12일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생존자들의 위기 신호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참사 생존자들이 동행했던 희생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면서 치료보다는 고립을 택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골목에서 1시간쯤 인파에 끼어있다가 간신히 구조된 20대 남성 B씨는 지역에 있는 가족에게조차 아직 참사의 경험을 말하지 못했다. 직장에는 사고 이틀 만에 복귀했는데, ‘이상 신호’가 따라다니고 있다. 인파가 가득한 지하철을 탈 때나 주변 사람들을 마주할 때 참사 당시 주변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떠올라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날을 기점을 삶에 격벽에 세워진 것이다.

B씨를 상담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14일 “술을 마시고 잊어보려 했지만, 악몽이 한 달 가까이 이어져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며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생존자가 자신보다 희생자 유족이 더 힘들 것이라는 짐작 때문에 적극적인 심리 치료를 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세상을 등진 A군은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 2명을 참사 현장에서 떠나보냈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생존자들은 ‘나는 많이 안 다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나? 유족이 더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갖는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참사를 직접 겪은 트라우마에 고통받을 뿐아니라 죄책감까지 겹쳐 자살 고위험군이 될 수 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생존자들은 일상에 복귀하고 다시 살아가야 하는데, 가족의 걱정이나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심 센터장은 “‘내가 뭐라도 했야 했는데’ ‘내가 가지 말자고 해야 했는데’라는 자책을 많이 하는데,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이나 온라인 등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도 생존자들이 치료 받길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혜연 한국심리학회 이사는 “정치권 등에서 이들에 대해 배려 없는 말들이 나오면, 아무리 국가에서 심리지원을 하려고 해도 생존자들은 치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며 “부정적 여론이 높아질수록 홀로 고통을 견디는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존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가족과 주변의 관심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현재를 보면서 참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잃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신윤정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생존자와 같이 상담을 온 가족들에게 ‘스스로 설 수 있게 존중하되 생존자의 상태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꼭 당부한다. 이전에도 우울증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이 특히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에는 유족이 동의 의사를 밝힌 희생자 77명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안치됐다. 유가족협의회는 “이제부터라도 희생자들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진짜 추모와 애도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성윤수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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