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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테일러가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 그가 붙잡은 것은 오직 하나님

영화 ‘허드슨 테일러’ 제작 중인 국제OMF 패트릭 펑 총재와 사모 제니 펑 선교사

1883년 허드슨 테일러의 모습. 한국OMF 제공

‘중국 선교의 대부’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1832~1905) 선교사. 파란 눈의 서양인 선교사는 20대 초반에 중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 죽는 날까지 중국인과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전했다. 당시 정서로는 파격적으로 중국인 문화인 변발을 하고 중국 전통옷을 입으며 현지 사회로 파고들었다. 아내 마리아 테일러와 세 명의 자녀, 수많은 동료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고난을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중국 선교의 소명을 이어갔다.

테일러 선교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12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그가 남긴 복음의 유산은 진행형이다. 1865년 그가 세운 중국내지선교회(CIM·China Inland Mission)는 1951년 중국의 공산화로 부득이하게 중국에서 철수하고 본부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1964년 CIM은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로 이름을 바꾸고 동아시아 등 전 세계 선교 사역을 감당한다.

1866년 5월 25일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내지선교회(CIM)를 설립한 후 동역자들과 사진을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가 허드슨 테일러와 부인 마리아 테일러이다. 한국OMF 제공

국제OMF는 테일러의 삶을 조명한 영화 ‘허드슨 테일러’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20일 인천 연수구 인천온누리교회에서 영화 제작 등으로 방한한 국제OMF 패트릭 펑 총재와 사모 제니 펑 선교사를 만나 영화와 선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국제OMF는 2013년부터 영화 제작을 기획했지만 10년 이상 지연됐다. 테일러의 삶을 현실감 있게 녹여낼 작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에 만난 중국인 출신 선교사가 대본을 쓰면서 영화 제작에 탄력이 붙었다.

제니 선교사는 “요즘 청년들은 책보다 영상을 접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며 “영화를 통해 테일러의 생애를 조명하고 선교에 관한 관심을 일으키고 싶어서 영화 제작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업 영화를 만들 목적이 아니므로 크리스천들의 헌금을 모아 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국제OMF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목표 모금을 80억원 정도로 정했다. 중국에서 촬영할 수 없기 때문에 타국에서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할 예정이다. 국제OMF에 따르면 현재 15억원 가량 모금이 되었고 어느 정도 필요한 금액이 모아지면 개봉한다고 했다.

영화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그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다. 제니 선교사는 “테일러는 왜소하고 연약한 사람이었고 선교를 시작할 땐 22세에 불과한 ‘영맨’(young man)이었다”며 “그가 붙잡은 것은 강하신 하나님이였다. 요즘 청년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분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테일러 선교사는 중국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드러내놓고 믿음 생활을 하기 힘들다. 제니 선교사는 중국 선교의 현황도 소개했다.

제니 선교사는 팬데민때부터 중국 가정교회 성도들은 창의적 방법을 사용해 선교에 동참한다고 했다.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하며 중보 기도 사역에도 힘쓴다. 이들은 믿음의 다음세대가 고난을 이기고 굳건히 서길 꾸준히 기도한다. 제니 선교사는 “중국인 성도들은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더 의지한다”고 밝혔다.

영화 ‘허드슨 테일러’ 제작 중인 국제OMF 패트릭 펑 총재와 사모 제니 펑 선교사가 20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선교도 이전과 다른 방식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패트릭 펑 총재는 “위기가 곧 기회의 시기”라면서 OMF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1899년 11월 2일부터 1901년 9월 7일까지 중국 산둥반도 지방, 화북 지역에서 의화단이 일으킨 외세 배척 운동인 ‘의화단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CIM에서 58명의 선교사와 21명의 아이, 2000명에 가까운 중국인 개신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패트릭 총재는 “CIM는 피해가 컸음에도 중국에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역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며 “1929년 기독교를 반대하는 중국 내 세력으로 사역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으나 CIM이 기도한 사역자 200여명이 세워지면서 사역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국제OMF 패트릭 펑 총재(왼쪽 세 번째)와 사모 제니 펑 선교사(왼쪽 두 번째), 공베드로 한국OMF 대표(오른쪽)와 사모 이선아 선교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공산화로 1950년대 중국에 있던 선교사가 모두 추방됐고 이 안에는 CIM 출신의 870여명 선교사도 포함됐다. 패트릭 총재는 “하나님이 중국 사역의 문을 닫으셨지만 OMF가 싱가포르로 본부 이전을 하면서 동아시아 사역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이전 사역들의 문이 닫혔다면 다른 방식의 선교 기회가 열리게 된다. 그는 “팬데믹 때부터 해외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이미 각 나라에 있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로컬(지역) 선교’가 열렸다. 온라인을 활용한 ‘디지털 미션’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창의적인 분이다. 그분은 새로운 방법들을 통해 사역을 이어가도록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1905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장례식 장면. 많은 이들이 선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한국OMF 제공

테일러 선교사는 어떤 원동력으로 평생 숱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을까. 테일러가 뿌린 씨앗의 열매로 수많은 선교사가 각자의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패트릭 총재에게 선교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고 했다. “선교는 하나님의 초대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 아래, 하나님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하나님의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천=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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