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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학계 원로, 이종윤 박사를 떠나보내며” 이상규 교수 기고

고 이종윤 박사의 신앙 유산

[기고]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전 장로교신학회 회장


한국 신학계의 원로인 이종윤(사진·李鐘潤, 1940~2023) 박사가 지난 18일 83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40년 8월 23일 충남 천안 성환읍에서 출생한 고인은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연구하고 귀국한 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충현교회 담임목사, 서울교회 개척 및 담임목회, 전주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칼빈탄생5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목회자였고 신학자였다.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해 아세아신학연맹(ATA)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아시아로잔위원회(ALCOE)와 같은 국제기관에서도 지도자로 활동했고, 한국장로교신학회 군선교신학회와 같은 학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봉사했다. 또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한국연합선교회(KAM)와 같은 여러 선교기관의 장으로 헌신했고, 북한구원운동 탈북난민보호UN청원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이런 다양한 활동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교회 갱신과 부흥,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일을 감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종윤 박사는 그 시대의 부름에 응하여 맡은 바 소임을 다했을 뿐이지만 필자가 먼발치에서 볼 때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분야에서 이바지한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정리해 두고자 한다.

첫째, 이종윤 박사는 개혁주의신학자로서 복음주의자들과 연대하여 한국교회의 건실한 신학 형성에 기여했다. 그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 45년간 한국에서의 개혁주의 신학 형성을 위해 힘썼다. 그는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자였지만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범 보수적인 교회 지도자들과 연합하기 위해 복음주의 운동에 관여했다. 신정통주의나 자유주의 혹은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혼합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개인과 집단을 규합하여 한국에서 건실한 신학과 교회 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 이전의 역사적 기독교신학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전도와 선교를 중시하고,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지 않는 신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즉 근본주의나 보수주의 등 모든 정통주의를 포용하지만, 근본주의 운동에서 모자랐던 사회 책임을 중시하고, 개인 구원과 기본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1980년 ‘복음주의신학회’의 창립과 초대 총무로서의 활동이었다. 현재 복음주의신학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회로 발전하였고, 한국기독교학회와 쌍벽을 이루는 학회로 성장했다. 또 1981년 5월에는 복음주의협의회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창립되는데 이때에도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박조준 목사가 회장으로, 김준곤 목사가 부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창립을 주도했던 이종윤 박사는 초대 총무로 선임되어 협의회의 사업을 관장하고 협의회 활동의 기초를 쌓았다. 그가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교회갱신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이나, 아시아로잔위원회(ALCOE) 의장으로 봉사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였다. 특히 그가 2012년 전후 총회창립100주년기념 표준주석편찬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표준 주석을 순전한 복음주의 신학 입장에서 기술하게 하여 이를 한국교회의 표준 신학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그 외에도 교회 연합기관이나 장로교신학회 등에서 한국사회의 현안, 이를테면 낙태, 사형제 폐지, 동성애, 교회와 국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 등을 취급하되 성경적 입장을 천착하고자 했다. 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이데올로기나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한국 사회 전반에 나타난 문화 마르크시즘의 유령을 막아내고 건실한, 그리고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 입장을 드러내고자 했던 일련의 활동은 한국교회의 건실한 신학 형성을 위한 노력이었다.

둘째, 한국교회 갱신 혹은 쇄신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교수와 목회 활동, 그리고 연합기관에서의 활동을 보면 그는 한국교회 갱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했음을 알게 된다. 한국교회 갱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구조적이거나 제도적인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점을 완전히 도외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근원적인 문제, 곧 바른 교회관을 확립하거나 성경적 교회관을 한국교회 현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교회갱신이었다. 그가 말하는 교회 갱신은 바른 교회 건설이었다. 루터가 단지 로마가톨릭에 대한 제도적인 구조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공격과 비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 건설을 의도했듯이 이종윤 박사는 바른 교회 건설에 힘썼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 갱신이었다. 이종윤 박사가 말하는 교회갱신이란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고인은 교회 개혁이라는 용어보다는 갱신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이런 그의 취지에서 1990년 ‘국제선교와 교회갱신 한국연구원’, 곧 일명 ‘김치’(KIMCHI: Korea Institute for Mission and Church Renewal International)를 설립하고 김치세미나를 개최하였고 1992년부터 목회자 신학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목회자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살고, 목회자가 변해야 한국교회가 변화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한국교회 갱신은 다름 아닌 목회자로부터 시작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교회 갱신연구원’을 조직하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목회자들에게 성경과 신학과 교회와 선교에 대한 다양한 강좌를 개최하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 갱신을 의도한 것이다.

셋째, 장로교회의 연합과 통합운동에 기여했다. 이종윤 박사가 끊임없이 추진해온 한 가지는 교회 연합 혹은 합동(통합)을 위한 노력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교파 간의 연합이나 일치 운동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같이하는 장로교회 간의 연합과 합동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앙고백을 같이하면서도 과도하게 분열돼 있다. 이들 교회 간의 점진적인 연합의 단계를 거쳐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그의 ‘일 교단 다 체제’ 방식의 통합론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여러 갈래로 찢어지지 않는 이상,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다”는 칼빈의 교회관(기독교강요, IV.1.2.)에 근거하여 교회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일 교단 다 체제, 곧 ‘하나(1)의 한국 장로교회(단)에 속한 서로 다른 교단(체제)’를 제안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일 교단 다 체제’는 하나의 교단으로 일원화하되, 현재 교단이 지니는 각 교단의 특성을 인정하고 치리회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런 과도기적인 잠정적인 기간을 거쳐 종국에 하나의 교단으로 완전히 통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 국가 사회문제, 통일문제, 선교사의 교육 파송 관리, 신학 교육 문제 등은 일 교단 체제하에 운영한다는 방식이었다.

그의 지도력 하에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은 2009년 칼빈의 출생일인 7월 10일을 ‘장로교의 날’로 선정토록 한 바 있고, 그해 7월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연합과 일치’를 주제로 제1회 장로교의 날 행사를 가진 바 있다. 2010년 7월 10일 제2회 장로교의 날 행사에서는 한장총 대표회장이 공식적으로 일 교단 다 체제 방식의 연합안을 제시하였고, 임원회는 이를 추진할 특별위원회 조직을 청원하여 총회에서 통과한 바 있다. 또 이 안에 대한 몇 차례 학술대회가 개최된 바 있다. 고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하였고, 비록 이런 취지의 노력이 아직 결실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고백을 같이하는 장로교회 간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교회의 연합과 통합 운동에 이바지했다고 생각된다.

넷째, 공산권 선교, 북한인권운동 및 탈북자들 위한 인권운동에 기여했다. 이종윤 박사가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할 때 중요한 한 가지 봉사는 인권 사각지대에서 버림받은 탈북민과 같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유민(流民)들을 위한 활동이었다. 그는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국내외 선교, 군(軍) 선교에 이바지하였고, 특히 공산권 선교를 위해서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공산권 선교에 관한 관심이 미미했으나 이종윤 박사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선교지를 방문하고 이를 지원하고 후원했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선교와 더불어 북한 구원 운동을 전개한 것은 매우 값진 봉사라고 생각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인권운동이자 선교운동이었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에 무심한 자들을 인권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은 위선이며, 고난받는 자를 외면하는 것은 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 구원 운동은 오늘 우리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고상한 도덕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1999년 이후 탈북 난민보호UN청원운동을 전개한 일은 진정한 의미의 인권운동이었고 값진 봉사였다고 판단된다. 탈북 난민보호UN청원운동은 탈북민들을 국제법상 ‘난민’으로 그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청원운동인데, 고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한기총이 이 운동을 발의하였는데, 시작한 지 2년 만에 목표치인 천만 명을 훌쩍 넘긴 1180만 495명의 서명을 받아 유엔본부에 전달하였다. 변호사였던 김상철 장로가 본부장으로 상임위원장인 이종윤 박사를 도와 이 일을 성사시켰다. 이런 노력이 2004년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 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고난당하는 자를 외면하는 것은 부도덕이며, 부정의이다.

다섯째, 자유 민주주의와 건실한 사회운동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사회의 건실한 발전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고양하려고 힘썼는데, 그에게 있어서 자유 민주, 인권은 북한 주민들까지 포함하는 전 민족적인 것이었다. 이 점 또한 그가 남긴 소중한 기여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유, 민주, 인권 등의 가치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 환경이라는 이유로 종교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마저도 위협당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탈북자들에 대한 배려가 금기시되고 있고, 심지어는 대북 전단 금지법이 민주당 의원들의 발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라디오도 인터넷도 없는 흑암에 처한 백성에게 미칠 작은 빛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오늘의 현실에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자유와 인권, 시장경제, 공평과 정의를 세우려는 그의 의지와 노력 또한 소중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고인이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를 필자 나름대로 몇 가지 지적하였지만, 이는 그가 남긴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봉사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비록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나 그가 남긴 신학적인 그리고 신앙적인 유산들은 다음 세대 한국사회와 교회에 값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상규 교수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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