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부모는 가정의 청지기


오르막길에서 핸드백으로 힙을 가리고 걷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걸어라. 호흡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라보자.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조각품이 있을까.

60년대 미니스커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었던 가수 Y가 무대를 휘어잡던 그 발랄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시대를 떠올려 생각하면 지금의 미니스커트는 전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노출이 심한 그 시기에는 성범죄가 거의 0% 수준이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덮고, 가리고, 감추는 의상 문화에서 과감하게 개방하고 노출하므로 남성들을 자극하던 성적 충동과 호기심이 오히려 와해되었다는 것일까. 우리 사회 전체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보탬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여성들의 발랄한 모습이 남성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탄탄한 개방적인 정신문화를 구축했다고 정의한다는 것이다. 미니는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오르다가 결국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가끔 계단을 오르다 여성들의 하의는 실종해버린 것인가’하고 발길을 멈추다가 문득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본다. 어느 날 내 스커트를 바라보면서 걱정하던 교회 어느 권사님이 생각난다. “치마 길이 조금만 더 내려 입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고 “네!! 고쳐 입을게요”라고 했다.

20대 신혼인데 건전한 사람에게 웬 간섭이냐고 투덜거리던 남편이 생각난다. 반세기가 지나 돌이켜보니 그때 교회 어른들에게 걱정을 끼치던 내가 주변의 젊은이들의 심한 노출을 보며 걱정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젊은 세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내 속에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의 눈에 티를 보기 전에 나 자신의 들보를 먼저 들춰보는 지혜를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는 미용인이다. 미용인으로써 살아온 세월이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그때도 엄청스럽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업소 안에서 온 직원들이 다양한 헤어스타일에 짧은 유니폼을 입고 미소 띤 얼굴로 고객들을 맞았다. 그 시대에는 원장님들이 무척 엄격했다. 자기 관리에 충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미용실을 찾아온 분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찾아온다. 미용인은 고객의 기대와 희망을 채워드리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한다. 타고난 재능과 창조적 손길로 한분 한분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직업이다.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기 위해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전문가가 제시해주는 로드맵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자칫 주변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잘못된 헤어 메이크업에 길들여지면 자연스러움을 벗어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서양인들의 미용 문화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베벌리 힐스를 찾아갔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90년대에도 미국 미용사회에 최고의 Beauty salon의 경영자 Lyda Gry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관저뿐 아니라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해 수많은 정·재계 스타들의 미용을 직접 진두지휘 한 분이다.

그녀 살롱은 진종일 바쁘게 붐볐다. 그분은 몇 권의 저서도 출간했으며 미용 시장의 세계적 흐름을 충분히 감지하는 분이었다. 그녀로부터 신선한 정보를 받았다. 미용 시장의 미래 자원이기도 한 10대들에게 H/M의 바른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 매년 고등학교 졸업생 대상으로 켐페인을 펼친다는 것이다. 즉 졸업선물로 H/M컵 상품권을 누구나 경험 할 수 있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한다고 하였다.

그 정보를 친절하게 일러 주면서 훗날 코리아에 돌아가면 한번 시도해보라고 아이디어를 주셨다. 온 세상 모든 시스템이 디지털화되어도 미용은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미용은 즉흥 예술이다. 사람의 개성을 찾아내고 사람마다 각자가 추구하는 감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경험과 수련으로만 가능하다. 거기에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출중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무시되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직업이 미용인이다.

미국은 성인식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빈부를 막론하고 상식화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밝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기성세대인 우리가 보호하고 눈 부릅뜨고 지켜내자. 자녀들은 부모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부모들의 삶을 바라보며 부모들의 족적, 즉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빛의 역할을 감당할 능력이 희박함에도 우리에게 빛의 사명을 이미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햇빛으로부터 반딧불까지 수만 가지 빛이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모양의 빛의 형태인지 알지 못하되 하나님은 우릴 빛으로 인정하고 계신 것이리라. 말씀이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라. 내 불빛은 하찮은 것이기에 말 아래 감추어 두는 사람이 있겠는가. 비록 내 빛이 바램에 흔들리는 호롱 불빛일지라도 작은 가정과 사회 한 모퉁이를 지키며 우리 기성 세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왔다.

우리에게 맡겨진 어린 자녀들이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지킴이의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할 우리의 자녀들. 우리가 오매불망 염원하는 것은 저들이 세상을 거머쥔 위대한 무엇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구촌 어디서든지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자. 우리의 능력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빛의 사명을 주심 같이 우리 후손들도 하늘에 떠 있는 뭇 별 중 어느 한 별이 되어 세상을 비출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빛을 말 아래 감추어두지 않는 현명한 자녀들로 성장하길 기도하자. 세상의 미래를 비추는 오묘한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녀들이 되길 소원하자. 저들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금항아리>

팔팔한 것을 푹 가라앉히려고
자신이 녹아내리는 희생
백년이 지나도 짠맛 그대로
본질이 변치 않는 소금
신선한 소금항아리에
뽀~얀 리본을 메어주었다
강산이 두 번 지나기까지
찹쌀처럼 고슬고슬하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의 본질은 짠맛이다
하얀 알갱이로 도드라진 형질,
항아리에 곱게 담겨 있다
장독대는 집안 곳간이며
장맛이 집안 연륜이고 인격이라던
소금항아리 쓰다듬으신 어머니
금덩어리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소금 없이는 살 수 없다던 어머니
차라리 녹아 물이 될 찌라도
변하지 않는 짠맛 그 굳은 절개
닮고 싶다 돈독한 정절
나도 소금항아리를 쓰다듬는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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