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한창] 피콜로는 어디 있는가 기사의 사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일년 설계도'를 준비한다. 절제 성결 건강 절약 화합 소식(小食) 금연 금주 등이 단골 소재다. 사람들은 1년이라는 이름의 운동장에 집결해 출발신호를 기다린다. 그러나 채 사흘도 지나기 전, 그 화려한 꿈들은 모래성처럼 붕괴된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사람들은 다시 과식하고, 예의를 잃어버리고, 서로 미워하는 과거의 삶으로 태연히 회귀한다.

우리는 과거의 습관으로 너무 쉽게 돌아가는 타성을 갖고 있다. 또 일상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무감각하다. 그럼에도 '1월의 영혼'에게서는 깔끔한 치약냄새가 난다. 1월에는 첫눈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뭔가 크고 비밀스러운 게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1월의 아침은 그 차가움으로 인해 더욱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냉동식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차가움이 곧 신선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새날의 인생 설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잘못된 습관과 게으름이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에겐 고집 센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은 품행이 바르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딸에게 오래 전 화덕에서 꺼낸 숯 한 덩이를 주면서 그것을 집어보라고 했다. 딸이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수산나는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뜨겁지 않단다. 불에 델 염려도 없어." 딸이 고함을 질러댔다. "뜨겁진 않아도, 손과 옷이 더러워지잖아요." 수산나는 눈물을 흘리며 타일렀다. "사랑하는 딸아, 죄는 식은 숯과 같단다. 비록 화상은 입지 않지만, 영혼을 더럽히는 경우가 많단다."

하찮게만 보이는 작은 잘못들이 결국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 사람은 작은 유혹에 너무 쉽게 무너진다. 그러므로 신앙은 끊임없는 결단을 요구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예수를 대속(代贖)의 제물로 주시고 구해낸 존재다. 그러므로 보잘것 없는 인간, 의미없는 인간은 단연코 없다. 사람은 모두 보석 같은 존재다.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다. 다양한 악기들이 각각 그들의 소리를 한껏 뽐내고 있을 때 토스카니니의 지휘봉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공연장에 적막이 흘렀다. 토스카니니가 말했다. "피콜로는 어디 있나요?" '작은 플루트'로 불리는 아주 조그만 목관악기,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미미한 악기. 피콜로.

토스카니니는 피콜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피콜로 연주자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에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악기를 연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 연주를 멈춘 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는 과연 명장이었다. 그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서도 피콜로의 작은 소리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미한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신다. 우리가 비록 피콜로 같은 미미한 인생일지라도, 우주라는 이름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하나님의 지휘에 맞춰 연주를 하다 보면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상처도 훈장이 된다. 아픔도 희망이 된다. 눈물도 진주가 된다.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우리의 슬픔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어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초라함과 나약함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의 인생 설계도를 구석에 밀어버린 나약한 사람들, 실의와 절망의 밤을 맞는 가련한 사람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탄식을 토해내는 고통스런 사람들, 경제한파에 상처입은 가난한 사람들, 호된 질병을 앓는 병약한 사람들…. 그 수많은 종류의 탄식을 하나님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가슴이 퍼렇게 멍든 미미한 존재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피콜로는 어디 있느냐?"

임한창 종교부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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