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애 (6) “헤이∼ 차이나” 놀림에 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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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차이나. 빵 좀 줘." "차이나, 사탕 안 주나?"

구제 활동을 벌이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비슷해 그런다 해도 기분이 나빴다. 구호품을 잔뜩 싣고 유치원을 방문할 때면 우리에게 잘 보이려는 교사들은 어린이들에게 "땡큐, 미시스(Mrs), 또는 미스트레스(Mistress), 마담(Madame)"이라고 부르라고 열심히 반복해 가르친다. 흑인들은 백인 남자를 부를 때 서(sir), 보스(Boss), 마이로드(My lord)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를 차이나라고 부르는 건 "야, 중국년아" 하는 꼴이다.

이곳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에 '개와 중국인은 탈 수 없다'고 쓰인 팻말을 봤다. 이곳 사람들은 중국인을 멸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주님 뜻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겸손히 섬기겠다고 결심한 나였지만 구제품을 나눠주는 현장에서까지 "차이나, 차이나"라는 소릴 들으니 화가 날 수밖에….

놀리는 사람들에게 "난 차이니즈가 아니고 코리안이에요"라고 가르쳐줬다. 또 차이니즈라 해도 사람을 멸시하듯 그렇게 부르는 것은 실례라고 알려줬다.

한 번은 걸어가는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의 소년이 "헤이, 차이나. 차이나" 하면서 큰 소리로 놀려댔다. 난 그 소년에게 다가가 조용히 타일렀다.

"당신들에게 사랑을 주고, 성경을 가르쳐주고 축복을 해주는 사람을 모욕하면 안 돼요. 몹시 불쾌하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돌아서서 몇 걸음 걷는데, 또 똑같이 외쳐댔다. 우리 속담인 '소 귀에 경읽기'라고나 할까.

식품을 기부받는 일은 가히 전투적이었다. 기부받은 음식물을 냉동기 11대에 보관하고 흑인 마을까지 차에 싣고 갔다. 식품을 제공받는 이들이 1주일에 2000여명이 넘는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볕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뿌연 먼지가 온 몸에 묻어도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에게 식품을 나눠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곤 했다. 식품을 나눠주고 있노라면 옆에 걸어놓은 내 겉옷은 어느 틈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더 안 준다고 불평했다. 이미 타간 음식은 감춰두고 옷이나 얼굴에 무슨 칠하고 변장하고 또 타가는 일이 반복됐다.

한 번은 한 여성이 식품을 받은 뒤 20m쯤 떨어진 곳에 서서 "차이나, 차이나"해 가면서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쳐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곁에 있는 흑인 청년에게 "저 여자가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봤다.

"차이나가 썩은 물건 가져다 나눠준다고 하네요."

듣기 민망했던지 흑인 청년은 그 여성에게 "그 썩은 거 이리 가져와라. 그거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소리치니 식품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잽싸게 도망갔다.

"오! 하나님. 차이나라고 사람들이 놀리더라도 화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힘이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더 겸손하게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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