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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요맘때 이 칼럼에 ‘엔(円)이 울다’를 썼다(2008년 1월8일자). 엔화 가치가 너무 떨어져 일본인 해외여행객들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투자기회를 찾지 못한 자본이 일본탈출 러시를 벌인 탓을 꼽았다. 그리곤 글 마무리에 “엔이 운다. 하지만 원 우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갈음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불과 1년 새 원·엔 환율 사정이 완전히 역전됐기 때문이다. 1년 전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당시의 엔저 상황을 ‘엔 표류-찌그러드는 일본’이라고 지적했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원 표류-찌그러드는 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년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약 35% 하락했고, 엔화는 19% 상승했다. 원·엔 환율로 따지자면 원화는 50% 이상 폭락한 셈이다. 지난해 초 원·엔 환율은 100엔 당 800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1600원선을 위협한다. 그야말로 원이 우는 모습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을 누비면서 호기롭게 엔을 펑펑 써댔던 분위기는 지난해 7월 이후 차츰 사라졌고 요즈음 서울 명동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관광지는 완전히 일본인 차지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여행을 포기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관광 그 자체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 엔저 시대에 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자와 자영업자들이다. 일제 성형기구나 고속 인쇄기를 엔 대출로 들여온 병의원, 인쇄소 등 중기·자영업자들은 까무러칠 노릇이다. 원화로 환산한 엔화 대출금 상환액이 배로 뛰어 사업의 수익모델은 진작 망가지고 말았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렸지만 중기·자영업자들에겐 대출금리가 그리 낮아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대출 자체가 어렵다. 엔 대출을 저금리의 국내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에게 엔 대출을 권장했던 은행들마저 대출을 꺼린다. 엔이 밉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거꾸로 엔고의 일본경제가 잘 나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본경제는 지난해 2분기부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시장이 위축된 데다 엔고로 주력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하락한 탓이다. 원저·엔고 불황에 한·일 양국이 시달리고 있지만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참 많이 필요할 듯하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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