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애 (10) “여고 교장 자리 줄테니 귀국하라” 제안 받고 흔들

[역경의 열매] 김용애 (10) “여고 교장 자리 줄테니 귀국하라” 제안 받고 흔들 기사의 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역을 시작한 지 6∼7년 됐을 무렵이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분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다짜고짜 그분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인생을 고생하면서 사느냐"며 유수한 여고 교장으로 초빙할테니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근사한 제안이었다. 잠시 후 난 그 학교를 미션 스쿨로 만들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분은 "윤리 과목에서 기독교를 가르칠 수 있다. 또 학교 안에서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나를 설득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장으로 간다면 남아공 사역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 선교회를 이미 만들었으니 고국에서 받는 월급으로 선교회를 운영하고, 방학 때는 남아공에 와서 선교회 일을 보면 되지 않는가.

한국과 남아공을 오가면서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 있지 않는가. 게다가 내겐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소중하지 않은가. 특별히 미래의 지도자가 될 여성들을 신앙으로 교육시킬 수 있다는 건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

흥분이 됐다. 그리고 희망이 일었다. 다음날 또 승낙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을 때 난 서슴지 않고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성령님께서 기도 가운데 영감을 통해 충고하신 것이다.

"내가 네게 무엇이 부족하더냐? 네게 허락한 사역을 그렇게 쉽게 그만두려 하느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아니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과분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엉엉 큰 소리로 울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겐 첫 시험이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교사 사역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헌금을 선교사역에 철저하게 쓴다고 피나는 노력으로 내핍 생활을 해 왔다. 또 정신세계는 내가 선망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희생과 금욕의 생활이었다.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는 삶이었다. 바울 사도의 고백이 떠오를 정도였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5).

몇년 전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가 내게 청혼을 했다.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사람이고 서로 좋아할 만한 그런 남자였다. 게다가 그는 부자였다. 나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프리카 사역도 여러 번 도왔다.

'그와 결혼하면 여왕처럼 남은 삶을 즐길 수 있을까?'

형제들까지도 오랫동안 고된 사역을 해서 하나님이 포상으로 행복하게 여생을 마치라고 은혜를 내리셨나보다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남아공 사역을 내 안위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지금까지 돌봐주신 것도 그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이유였다. 두번째 시험이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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