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연은 잠시 멎었다.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된 가자지구 건물은 허물어졌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폐허가 됐다. 많은 사상자를 냈고, 많은 가정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은 전쟁과 무관한 어린이들을 피해 가지 않았다. 외신이 전한 어린이들의 참혹한 정경은 보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맨발로 벽에 기대어 울먹이는 어린이의 공포에 젖은 눈빛, 울부짖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 부상한 어린이의 고통스런 눈빛,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어린이들의 원망스러운 눈빛, 가족을 잃고 목 놓아 우는 어린이들의 한 맺힌 눈빛, 주먹을 불끈 쥐고 시위에 나선 어린이들의 분노하는 눈빛, 마취를 하지 않고 치료를 받는 어린이의 일그러진 표정….

아무 죄 없는 어린이들의 눈빛과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들의 처참한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겁에 질린 어린이들을 199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다국적군의 공격에 맞대응하기 위해 이라크군이 텔아비브를 향해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였다. 스커드미사일 탄두에 화생방 물질이 실려 있다고 세계 언론들이 오보를 내는 바람에 텔아비브의 한 호텔에 묵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대피했다. 부모 품에 안기거나 손에 이끌려 피신하는 어린이들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최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맹공이 이어지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로켓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때 보도된 사진 한 장이 남긴 잔상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여성이 두 어린이를 팔로 감싸고 함께 보도블록에 엎드려 있는 사진이었다. 얼핏 보면 평시에 화생방 훈련을 하는 그저 그런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막을 보호하려고 양손으로 귀를 가린 어린이들이 치켜뜬 눈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외상을 입지 않은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이런 공포를 느꼈다면 몸과 마음에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은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걸프전이 끝난 뒤 중동에서는 후세인과 부시라는 이름을 가진 신생아들이 많이 태어났다. 이라크를 지지하는 아랍 국가들에서는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을, 이스라엘에서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본떠 아기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아기들이 커서 자기 이름의 내력을 알게 된다면 칭찬보다는 비난을, 나눔보다는 독점을, 섬김보다는 군림을, 대화보다는 폭력을, 평화보다는 전쟁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교전이 재개되는 불안한 휴전 상태에 놓여 있는 가자지구의 한 천막학교.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학교 건물은 사라지고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천막학교 바닥에 배를 깔고 공부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잿더미로 변한 천막학교 한 모퉁이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포연은 잠시 멎었을 뿐이다.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가 오랫동안 지속될 휴전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양측의 무력 충돌은 언제 재연될지 모른다.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지원과 기도가 절실한 때다. 해외 선교사 파송 규모 기준으로 볼 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교회가 가자지구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대해 본다. 해외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 교회가 합심으로 기도하고 성금과 구호물품을 들고 달려갔던 것처럼.

염성덕 종교기획부장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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