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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동네북이 된 경찰과 국군

[한석동 칼럼] 동네북이 된 경찰과 국군 기사의 사진

용산 철거지역참사와 관련해 헌병들까지 봉변을 당했다. 며칠 전 서울 도심의 '폭력살인진압 규탄 및 MB악법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 현장 주변에서였다. 통탄할 일이다. 공무수행 중 시위대에 끌려간 헌병 6명은 욕설, 집단폭행에다 경찰 프락치인지를 추궁받느라 신분증을 빼앗기고 무릎을 꿇은 채 군번을 외어보이는 등 고초를 겪었다. 헌병들을 무릎 꿇리기 하루 전 시위 때는 관례대로 수천명이 도로를 점거해 경찰과 대치했다. 물론 쇠파이프도 있었다.

명색이 민주법치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국군이 능멸 테러를 당했는데도 후속 조치가 어땠다는 소식은 없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들이 경찰이었다면 뭘 어쩌려 했다는 건가. 그날 빼앗은 경찰옷에 불을 붙여 경찰버스 밑에 던진 것으로 봐 무슨 야만이 벌어졌을지 알 만하다.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는데, 또 그렇게 하자는데 무슨 군더더기 말이 필요한가. 경찰과 군인 -.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국가공권력의 마지막 보루다.

지금의 도를 넘은 집회·시위 배경은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시절 군과 경찰이 부당한 공권력 행사 하수인을 했던 것이 원죄다. 약자들의 메아리없는 호소는 폭력을 수반한 극단적 의사 표시로 발전했다. 불가피했고 시위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가. 이번 같은 국군 모독이 선진국에서 있었다면 어떤 가혹한 대응이 뒤따랐을지는 말하나 마나다. 선진국은 그냥 선진국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없이 불법을 방관토록 압박하는 것은 공권력 자멸을 강요하는 것”

세계는 우리더러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로 칭송한다. 경제한파로 잔뜩 움츠리기는 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부자나라다. 문제는 만개(滿開)를 넘어 주체를 못해 방종·반민주로 손가락질받는 자유와 민주주의다. 권력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지금 한 명이라도 있는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인 반정부시위에는 피해 당사자측과 떡 본 김에 뭐 지내려 한 정치인들 외에 불만세력, 나아가 체제 전복을 꾀하는 세력이 적잖이 포함됐을 것이다.

한심하기로는 몇몇 야당 정치인들을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앞장서서 사회통합을 이끌어야 할 그들은 대목이라도 맞은 듯 시위 열기를 달구려 한껏 풀무질을 했다. 최소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만큼은 범법을 하지 않는 게 상식인데, 그런 기대는 사치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냉정히 말하면 용산참사도 불법시위, 더구나 전문시위꾼들까지 거들어 위험을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도심 대로변 건물에서 화염병이 날아나오고, 총 같은 새총으로 골프공과 돌멩이를 쏘아대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찰이 진압에 나섰던 것은 문제될 일이 아니다. 과잉진압 여부도 수사를 통해 가려야지 감성적 여론에 좌우될 사안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없이 불법을 방관토록 압박하는 것은 공권력 자멸을 강요하는 행위다.

"법 질서가 결여될 때 독재주의와 무정부 상태는 팽배해진다. 양쪽 모두 방종하고 전제적이다. 독재주의는 방종한 통치자의 무정부상태이고, 무정부상태는 방종한 무리의 독재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작고한 미국 언론인·사상가 월터 리프먼의 말이다. 건국 이후 최근까지의 우리 정치사회사를 축약해 놓은 것 같다.

재임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끔찍히 사랑한다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더러는 지금도 서민들을 걱정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고마운 일이지만, 자리가 높았던 것에 비례해 퇴임 후 고대광실에서 만인이 부러워할 귀족생활을 향유하는 위선은 더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 jerome7@kmib.co.kr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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