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이 희망과 미래] (2) LG전자 美 자회사 ‘제니스’ 기사의 사진

한해 9000만달러… 로열티 버는 ‘황금 거위’

제니스(Zenith).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한 LG전자의 미국 자회사다.

LG전자가 지난 1995년 인수한 미국 디지털TV 업체 제니스는 인수 후 수년간 적자 폭만 키우며 속을 썩이자 골칫덩이를 팔아버리자는 볼멘소리가 줄기차게 나왔다.

하지만 LG전자는 이 회사가 가진 첨단 기술을 지키고자 피나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기업가치 20억달러에 지난 한 해만 9000만달러를 벌어다준 든든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탈바꿈했다. 제니스 기술로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익은 전 세계적인 불황 한파를 이겨내는 동력이 되고 있다.

◇미운 오리새끼 제니스=제니스를 인수한 1995년엔 장밋빛 미래가 가득해 보였다. 당시 한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인데다 순수 미국 자본의 가전업체를 한국 업체가 인수했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LG전자의 전신 금성사는 1950년대 우리나라를 휩쓸던 미제 제니스 라디오를 넘어서고자 1958년 가전산업에 뛰어들어 이듬해 첫 라디오를 만들어낸 기업이다. LG전자로선 여러모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제니스의 실적은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고 소니, 필립스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적자를 늘려갔다. 모기업이 미국 기업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합병한 기업을 정상화시킬 내부적 역량이 부족했던 점도 위기를 키웠다.

결국 1998년 외환위기 때 LG전자는 제니스의 기업회생 계획을 미국 법원에 신청하며 기나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LG전자는 제니스를 마케팅·연구개발 중심의 회사로 재편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미국 일리노이주 멜로스파크 TV 공장을 필립스에 팔았다. 멕시코에 있던 공장 4곳도 정리했다. 보통 3개월 걸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업회생 계획 검토가 제니스엔 11개월이나 걸릴 정도로 지난한 주주, 직원 설득 작업을 거쳤다.

◇믿은 것은 기술뿐=LG전자가 힘든 구조조정을 해가면서 회사를 지킨 건 단 한 가지 이유에서다. 제니스가 디지털TV 원천기술인 'VSB(Vestigial Side Band)'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LG전자가 이 기술을 지키기 위해 들인 노력은 엄청나다. 2004년까지 구조조정 비용에 자산매각처분 손실자금, 자산평가 손실까지 10억달러가 투입됐다. 회사와 기술을 당장 팔아버리라는 주변의 조언도 끝없이 제기됐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당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놀랍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LG전자 관계자는 "당시 회사 유지 결정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LG전자의 오랜 기다림은 2006년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미국 디지털TV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제니스는 2005년엔 적자를 면했고 2006년 2000만달러 수익을 올리며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디지털TV 시장이 궤도에 오르자 회사 수익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 6000만달러에서 지난해 9000만달러로 늘었다. 기술 하나로 거둔 수익이다.

◇캐시카우 제니스=제니스의 효자 노릇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은 LG전자를 더욱 들뜨게 한다. 미국은 늦어도 상반기까지 세계 최초로 디지털 방송 체제로 완전히 전환할 예정이어서 디지털TV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니스가 벌어들이는 로열티도 덩달아 상승한다. 여기에 미국 방식의 방송 규격을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의 디지털TV 시장도 제니스의 손 안에 있다. 제니스는 이미 도시바, 샤프, 미쓰비시 등 일본 주요 TV 제조사와 로열티 협상을 마쳤고, 50여개 업체와 특허 협상을 진행 중이다.

모든 TV 업체가 제니스에 내는 로열티는 대당 3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니스는 연구·개발 회사로 탈바꿈했기에 특허료 매출이 수입으로 직결되는 구조라 1대 팔릴 때마다 수익이 차곡차곡 쌓인다. 과거 부호분할방식(CDMA) 휴대전화가 팔릴 때마다 우리 휴대전화 회사들이 미국 퀄컴사에 특허료를 꼬박꼬박 지불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디지털TV 분야에선 LG전자가 퀄컴의 위치에서 가만히 앉아 돈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앞으로 2∼3년간 제니스의 특허 수입은 적어도 1억달러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제니스의 교훈은 간단하다. 경영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핵심 기술을 끝까지 지켜낸다면 위기가 끝났을 때 더 큰 수익이 돌아온다는 점이다. 물론 기다림의 밑바탕엔 시장 변화에 대한 정확한 안목이 깔려 있어야 한다. 아날로그TV 시대가 저물었다는 확실한 시장 판단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과가 가능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제니스를 지켜내기 위해 10년간 10억달러 이상을 썼다"면서 "앞으로도 기술 개발과 핵심 기술을 지켜내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