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유종호 “반세기 망각에의 저항… 志士悲秋의 낙서죠”

문학평론가 유종호 “반세기 망각에의 저항… 志士悲秋의 낙서죠” 기사의 사진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 출간

"강렬한 충격은 정신적 외상으로 각인되어 마치 필름을 돌려보듯 반복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이지요. 최근의 일은 오히려 곧 잊곤 하는데 열일곱 살 때 겪은 6·25 전쟁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요."

열일곱 살 때 경험한 6·25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담아낸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현대문학)을 출간한 문학평론가 유종호(74)씨의 기억력은 학계와 문단에서 정평이 날만큼 적확하기로 유명하다. 반세기 전, 얼핏 스쳐간 사람들의 이름은 물론 체취와 음성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그 세밀한 정도가 일기를 들여다보듯 촘촘하다 못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이번 에세이는 1941∼49년의 유년시절 체험을 담은 2004년작 '나의 해방 전후'에 이어 격동의 현대사를 기록한 그의 두 번째 회상기로 지난해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됐다.

"50년대를 흔히 폐허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폐허의 느낌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무조건 '폐허' 시대라고 명명하는 건 좀 과장된 듯싶고 뭐랄까… 당시엔 부자나 가난뱅이나 큰 차이가 없었어요. 전쟁 때라 삶의 조건이 거의 비슷했던 것이죠."

말이 회상기지, 책장을 넘기면 17세 소년이 엄동설한에 광목의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떠났던 피란길부터 시작해 곤궁한 피란생활, 청주와 원주에서의 미군부대 생활을 거쳐 다시 충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연재를 할 당시에 글을 읽은 주위 사람들이 나더러 꼼꼼하게 옛 시절을 메모해 놓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쟁통에 먼 훗날에 대비해 메모를 남긴다는 건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지요. 전쟁은 내 최초의 사회경험이자 세계경험이었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아 세세한 것까지 기억에 남아 있어요."

소설가 이문구(1941∼2003) 등이 생전에 소설로 써보라고 권유했지만 소설로 쓰면 허구가 되어버린다는 생각에 거절했을 정도로 그의 회상기는 진실의 순도를 보증하는 사회사적 가치와 문학적 가치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많이 기억하는 쪽이 약자이며 강자는 절대 기억하지 않는다는 깨우침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많이 상처받았다는 것이고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중략) 기억은 상처 입은 자존심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내적 독백이다"(116쪽)와 같은 문장은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동시에 되새기게 한다. 미군부대에서 받은 '새경'을 고스란히 생활비로 써야 했던 처지에도 서정주의 시집 '화사집'을 큰마음 먹고 사고, 스스로도 시를 '끼적이던' 그의 모습에서는 물질적인 갈증보다도 절실했던 문화적인 갈증도 엿볼 수 있다. "사무소가 텅 빈 점심 때에 심심풀이로 연필로 끼적이고 나서 그 이튿날 다시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고쳐보곤 했다. 피란지에서 집 생각을 한다는 유치한 세월 내 지사비추(志士悲秋·지사는 때를 슬퍼한다)의 낙서다."(97쪽)

17세 유종호의 문학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반세기 동안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을 계속해온 그의 집념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독특한 쾌감을 맛보았지요. 지배당하고 번롱당하기만 했던 시절을 이제 내 쪽에서 지배하고 있는 듯한 환각이 주는 쾌감이지요. 피란 때 어른들이 '먼 훗날 이 고생을 옛 얘기할 날이 꼭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그 먼 훗날에 당도한 것이지요. 이 책이 무기력한 망각에 저항하는 끈질긴 기억의 투쟁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겁니다."

그는 "기왕에 펜을 들었으니 6·25 전쟁을 다룬 회상기 한 권을 더 채워 회상에세이 3부작을 완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