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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살아 꿈틀대는 흙으로의 초대

[책과 길] 살아 꿈틀대는 흙으로의 초대 기사의 사진

흙에도 뭇 생명이/권오길/지성사

'달팽이 박사'로 잘 알려진 생물학자 권오길(69) 강원대 명예교수가 흙에서 사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흙에도 뭇 생명이…'(지성사)를 출간했다. 그동안 달팽이를 다룬 '꿈꾸는 달팽이' '달과 팽이', 물고기의 생태를 다룬 '열목어 눈에는 열이 없다', 단세포 생물을 다룬 '바람에 실려온 페니실린' 등 다양한 생물의 세계를 소개해 온 권 교수가 이번에 관심을 둔 것은 흙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일생을 같이하는 흙 속에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 궁금했어요. 들여다보니 그 속에 온갖 생물들이 부글거리고 있더라고요. 미생물의 세계도 발견할 수 있었고요. 땅에다 씨앗을 심으면 거기에서 싹이 트는 것은 흙이 살아 있다는 증거죠. 호박씨 하나를 심으면 머리통만 한 누런 호박이 뒤룽뒤룽 열리는데, 이 어찌 그냥 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남 산청에서 흙을 주워먹으며 자랐다는 권 교수는 강원도 춘천의 '불법 개간한 밭떼기'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책은 텃밭 속에서 만난, 살아 있는 토양생태계의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땅딸막한 땅강아지, 똥 굴리는 소똥구리, 톡톡 튀는 톡토기, 땅에 사는 갑각류 쥐며느리, 돈벌레로 불리는 그리마 등의 이야기가 저자 특유의 걸쭉하고 유쾌한 입담과 함께 담겼다.

생물의 몸길이 몸무게 생김새 생활권 식성 등은 물론이고 이에 얽힌 일화도 들려준다. "두더지는 포유강 식충목 두더지과에 속한다"는 기본 지식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더지 앞에 '요 미운 놈'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고 녀석을 텃밭을 망치는 무 도둑놈으로 의심한다. 실험실의 생물 이야기를 넘어 함께 텃밭에 앉아 토양생태계의 주인공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한다.

"새봄이 시작되면서 나는 공연스레 마음이 설레고 손길 발길이 바빠진다. 아니, 벌써 퇴비를 사서 밭두둑에 뿌리고 흙을 덮었다. 텃밭을 일궈 남새라도 좀 뜯어 먹자는 심보이겠으나, 실은 '깡 촌놈'의 피를 못 속이고, 뭔가 심어 키우는 사육본능이 발동한 탓이다. (중략) 흙가루가 떡고물같이 보슬보슬한 것이, 봄 냉이 향을 풍긴다. 새콤하고 달콤한, 풋풋하고 은은한 흙내!"

2004년 '꿈꾸는 달팽이'를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대중 과학서를 쓰기로 했지만 이듬해 '달과 팽이' 이후 새 책이 나오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그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글 쓴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손자·손녀들이 읽을 책을 쓰느라 그랬다"면서 "앞으로는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초 나올 다음 책은 '개펄의 생물' 이야기, 그다음에는 '생물 속 생물' 이야기를 예정하고 있다고.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에서 난 걸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식물이 뿌리를 박고 사는 땅이고, 우리가 집 짓고 사는 삶터이자, 우리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흙은 그저 흙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각자 마음의 생태계는 어떤가, 우리의 성정(性情)은 잘 지내시는가 하고.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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