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역사적 인물들의 편지를 엮은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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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연인 또는 친구 등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받아본 적이 있는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 이메일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에 편지는 추억의 산물이 되고 있다. 여기 세계사를 빛낸 인물들의 편지가 여러 통 도착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을 통해 여전히 유효한 편지의 순기능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글솜씨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사랑하는 어머니’/임경민 편역/아름다운날

'어머니는 나를 만들고 나는 역사를 만들었다.'

44명의 역사 속 명사들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이 책의 부제다. 갓난아이가 처음으로 배우는 옹알이가 어머니이며, 현실세계를 붙잡으려고 애쓰다가 생의 불안한 집착을 내려놓으며 던지는 마지막 말 역시 어머니이다. 명사들은 문학적 감수성으로 당대의 역사를 행간에 채워넣으면서도 때론 칭얼대고, 때론 우쭐대고, 때론 비열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편지를 읽어보자. "존경하는 어머니! 우리가 당한 패배에 관해 소식 들었을 줄 압니다. 그 소식은 십중팔구 실제보다 더 나쁘게 전해졌겠지요. 그래서 지난 9일 수요일, 프랑스 요새로부터 7마일 떨어진 곳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교전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1755년 7월18일)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패배 소식을 서둘러 전하는 아들의 심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른 여자의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가 태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고통을 어머니에게 토로했다. "아르투아 백작 부인이 아이를 낳았어요. 출산 시간 내내 저는 그녀의 방에 있었어요. 그동안 저는 제 뱃속이 아닌, 다른 여자의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가 탄생하는 고통을 생생하게 겪어야만 했어요."(1775년 8월12일)

독일 음악가 멘델스존은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감을 얻었다. "우리 눈앞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을 제가 어머니의 반만큼이라도 묘사해낼 수 있다면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편지를 받아보실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너무나 바쁘게 지낸 탓에 지금은 조금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좀 추스르기 위해 며칠 동안 소파에 누워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읽고 밤에는 들판을 배회하며 지냈습니다."(1842년 6월21일)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게일은 영국 어머니로부터 실천정신과 조직을 이끄는 재능을 물려받았다. "오늘 창문 너머로 개선행진을 지켜봤어요. 제가 기쁨을 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모두 저세상으로 떠난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죠. 제겐 참으로 쓸쓸한 일이었지만 십자훈장들로 뒤덮인 노병들의 화려한 행렬은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장송곡처럼 들렸습니다. 깊고 영예로운 슬픔이 깃든 소리였지요."(1863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어머니! 제발 용기를 가지시고 제가 끝까지 지탱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세요.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퇴각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어요"(1792년)라고 적었고, 미국 6대 대통령을 지낸 존 퀸시 애덤스는 러시아 대사 시절 "지금 이 순간 그가 만일 살아있다면 그의 곁에는 지리멸렬한 패잔병들만이 남아 있을 겁니다. 굶주려 죽은 병사가 수천이라고 합니다"(1812년)라고 나폴레옹의 퇴각 소식을 전하고 있다.

자신의 곡을 연주한 콘서트가 성공리에 막이 올랐음을 알리는 모차르트, 어머니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빅토르 위고, 선교활동을 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강제수용과 채찍질이 난무하는 사할린의 상황을 전하는 안톤 체호프 등의 편지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한다면서도 여성들을 멸시하고 학대한 인사들의 편견과 오만은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지낸 날 하루도 없다오”

‘역사를 창조한 이 한 통의 편지’/이덕희/문예출판사

한 통의 편지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나폴레옹, 베토벤, 스탕달, 보들레르 등 9명의 예술가 또는 사상가들의 서한문을 담은 이 책은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꾼 편지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 책은 육필편지를 위한 찬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영혼들의 내면을 살펴보고, 편지를 쓴 주인공의 인격과 사상, 그리고 그들이 처한 시대의 문화사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폴레옹은 아내 조세핀에게 수백통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소. 하룻밤도 당신을 내 팔 속에 껴안지 않고 지낸 적은 없다오. 한 잔의 차조차 나의 생명, 나의 영혼인 당신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은 영광과 야심의 부름을 저주하지 않고 마시지는 않았소."(1796년 3월30일)

나폴레옹의 야심은 조세핀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 불타올랐다. "그대는 내 삶의 유일한 생각이오. 군사문제의 중압으로 근심에 싸여 있을 때, 전투의 결과에 대해 초조해 있을 때, 또는 사람들이 내게 혐오감을 일으킬 때, 그럴 때면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오. 왜냐하면 내 심장은 그대의 초상화를 향해 고동치기 때문이오. 무슨 마법으로 당신은 나의 모든 능력을 사로잡아 내 존재의 의식을 온통 당신 자신 속에 빨아들인단 말이오?"(1796년 4월3일)

베토벤 사후 그의 캐비닛 속에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됐다. 그것은 천재 음악가의 선율을 낳게 하는 모티브가 되고 영감이 된 기록이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한층 강하다오. 하지만 당신의 마음속 생각을 부디 내게 숨기지 말아주오. 이처럼 가까이 있으면서! 그처럼 멀다니! 우리들의 사랑이야말로 진실로 천상의 건축물이 아니겠소. 또한 천국의 천장처럼 견고한 것이 아니겠소?"(1812년 7월6일)

베토벤이 괴테의 시 '고요한 바다와 행복한 항해'를 위한 합창관현악곡을 헌정할 정도로 두 사람의 교유에 가교 역할을 한 것은 문학소녀 베티나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였다. "지금 당신께 얘기하려는 그 사람을 보았을 때 저는 온 세상을 잊었더랍니다. 그 사람은 바로 베토벤입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세계와 당신을 망각하도록 했답니다. 베토벤은 지적 삶의 본질인 신성한 마법을 그의 예술 속에서 행사하고 있습니다."(1810년 5월28일)

작가 조르주 상드가 쇼팽의 친구인 폴란드 백작에게 보낸 편지는 동서고금의 로맨스 연대기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가 그 대상을 손에 넣기 위해 사용한 편지라는 수단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만약에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처럼 두 가지 다른 사랑, 삶의 육체와 영혼을 포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것이 될 것입니다."(1838년 6월)

'적과 흑'의 스탕달이 발자크에게 띄운 편지는 동시대 두 작가의 이질적 가치를 보여주고, 보들레르가 바그너에게 보낸 서신은 음악에 빠져든 시인의 숭고한 열정을 드러내고, 토스카니니가 무솔리니에게 보낸 편지는 지휘자와 독재자의 역사적 대결을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12년간의 자료 수집 끝에 이 책을 출간한 저자는 "컴퓨터가 원고지를 대신하는 시대에 육필편지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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