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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섬에 발목잡힌 사내 그들 이야기로 소금을 만들다

바다와 섬에 발목잡힌 사내 그들 이야기로 소금을 만들다 기사의 사진

한창훈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46·사진)의 소설은 소금이 되려고 한다. 책장을 넘기면 그가 3년 전부터 칩거하고 있는 고향 거문도의 짠 바람이 일렁인다. 그에게 바다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공간이다. 여수에서 뱃길로 두 시간. 그의 누옥은 거문도와 함께 바다에 뜬 또 하나의 섬인 것이다.

첫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1996) 이래,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인간 노동이 작용하는 터전으로서의 바다 혹은 바닷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한창훈은 뱃사람보다 더 고집스러운 작가다. 최근 출간된 다섯 번째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 역시 바다에 발목 잡힌 이들의 이야기다.

"글을 모아놓고 보니까 태반이 섬과 바다의 이야기네요. 여기에 너무 잡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저라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방향을 트는 것보다는 여기서 조금 더 깊어져야지 하는 마음이지요."

표제작의 주인공은 뱃사람인 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부터 "너는 울다가도 뱃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그쳐부렀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쉰 살의 사내다. 사내는 큰 배를 샀다가 어장이 죽어 몇 년간 큰 손해를 본 뒤 배를 팔아버린 막막한 처지다. 당장 뭍으로 떠나겠다는 아내는 "도대체 바다가 뭐요"라거나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라며 사내를 자극한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다시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긴 표주박처럼 살았다. 바다 한가운데 몇 뼘 땅일 뿐인 섬과 몇 발자국 나무판자인 배에 떠서 살았던 것이다. 아주 넓게,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막힌다."(33쪽) 사내의 번민은 자신의 존재 근거가 허물어지는 상황에 던져진 인간의 보편적 고뇌로 읽힌다.

이렇듯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근거가 바다와 포개어져 있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고집스럽게 바다를 터전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씨 작품의 묘미는 선대 작가 이문구처럼 변두리 인생들의 흐벅진 육담과 민중의 잠언적 지혜가 곁들여진 소설 언어에 있다. "여기 돼지국밥이 유명하다등만" "접대 누가 여기 와서 묵었다는디 터럭이 끄멓게 붙어 있더라고 그러데" "들이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선산 팔아먹은 오촌 같을 때가 있지만 그래서 이르기를 불알과 자식은 짐스러운지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같은 맛깔스런 문장들은 소금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부패하지 않을 한국 소설언어의 보기 드문 자산이다.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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