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 시인이 된 12남매의 막내 그 옛 사연

고영민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 시인이 된 12남매의 막내 그 옛 사연 기사의 사진

시인 고영민(41·사진)은 12남매의 막내다. 열네 살 때 고향인 충남 서산을 떠나 마흔 너머까지 도시에서 살았으되 그의 시적 광맥은 고향과 유년시절로 뻗어 있다. 12남매의 막내였기에 그는 가장 늦된 동시에 가장 오래 지켜보는 언어적 습성을 체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비)은 12남매를 키우느라 허리가 휜 아버지 타계 이후 텅 비어 버린 고향집의 울음소리가 스며 있다. "봄은 오네/강가에는 한 무리의 철새가 모여 있네/모여 있는 곳으로 봄은 오네//강물은 반짝이고/흐름은 졸리네//한 구의 시신(屍身)을 끌고 오네//나는 열두 살/오후 세시"('입춘')

겨울강이 간직한 사연이 한 구의 시신으로 함축되고 있다. 사연이 풀리려면 입춘 무렵의 해빙기가 제격이겠지만 시인은 옛 시골집 대문에 흔히 붙여놓는 '입춘대길(立春大吉)'에서 '대길(大吉)'쪽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12남매의 사연이 봄날의 강물처럼 풀리는 오후 세시가 그가 바라보는 시적 접경이다.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집착이랄까. 하지만 단순히 추억을 환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봄 강가에서 한 구의 시신을 건져내는 독특한 어법을 통해 추억의 가치는 늘 현재적 의미를 띠고 강한 울림을 던져준다. 환갑을 지난 형님이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바바리맨 인형을 사 들고 내려가 추석 전날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 고향집의 정경은 시 '효자'에서 이렇게 소묘된다.

"이어 여섯 아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려 나와 어머니 앞에서 자랑스레 심벌을 흔들어댄다. 어머니는 과수원을 하다 사고로 죽은 넷째 형도 불러세우고 그 죽은 아들 역시 어머니 앞에서 으하하하! 거대한 심벌을 흔들어댄다.(중략) 고단한 저녁, 어머니는 가끔씩 아들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그때마다 바바리맨은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은 알몸으로 으하하하!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자지를 흔들어드린다"('효자' 일부)

그의 시가 전원에서 나왔으되 전원시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건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영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농촌과 대가족의 체험에서 길어올린 통찰을 현재라는 시간대까지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 살 난 딸아이의 목에 가시가 걸려 당황하는 대목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당신의 입속' 일부) 시인은 "원고를 묶는 동안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울음소리가 큰 여식을 하나 더 얻었다"고 말했다.

정철훈 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