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칼럼] 사이코패스 앞에서 기사의 사진

세상이 흉흉하다. 흉흉한 들에도 봄은 오는가. 삭풍의 벌판에서 따뜻한 보금자리가 그립듯, 살벌한 세상이기에 더욱 희망과 회복의 봄이 그립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라는 말은 무슨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정장을 입은 뱀', 그 사이코패스가 최근 느닷없이 우리 앞에 잇따라 출현했다.

강호순의 연쇄 살인 사건은 가뜩이나 경제 위기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침울한 분위기를 가중시켜 주었다. 성악가를 꿈꾸다 희생당한 여대생은 우리의 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끝내 귀가하지 못한 희생자들은 우리의 가족이었다. 그래도 강호순은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그러하듯 "차를 타지 말았어야지…"라고 하면서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렸다.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노출된 이후 아들 걱정을 했다. 이 말에 시민들은 더 분노했다.

연쇄살인의 참극은 현대 사회의 구조악, 병든 인격이 만든 합작품이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가 유전적인 요인, 불우한 가정 환경, 비뚤어진 가치관에 의해 생성된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말했다. "쇠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죽이는 것은 손이다. 손은 마음에 따른다." 살인마가 그랬다. '멀쩡하게 생긴 외모가 살인 흉기였다'는 언론의 표현대로, 강호순의 수려한 외모 이면에 사악한 내면이 있었다. 그 사악한 마음에 양 같은 우리의 딸들이 희생당했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흉악한 죄성. 그것은 물질만능으로 치장한 현대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일찍이 구약 시대 아모스 선지자는 부유한 외양과 달리 안으로 죄성이 만연한 사회를 가리켜 '여름 실과'라고 했다. 여름 실과는 겉보기에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그러나 내용물은 금방 부패하기 쉽고, 그 부패는 언제 얇은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올지 모르는 특성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그랬다. 선지자는 여름 실과를 병든 사회의 아이콘으로 제시하며 민족의 각성과 경건 회복을 촉구했다. 무지몽매한 백성은 물질만능, 향락주의에 빠진 채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의 황금 송아지'를 찾아가며 숭배했다.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 5:5∼6)

강호순 사건에서 우리는 살인마에 대한 분노를 넘어 생명을 경외하라는 시대의 경보(警報)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불행은 생명 경시 풍조에서 비롯된다.

생명은 창조주의 선물이다. 성경은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씀하셨다(시편 36:9). 모든 생명은 신성하고 아름답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가 생명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가치가 얼마나 훼손당하고 있는가. 아프리카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말했다.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없이 뜯지 않는다. 한포기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 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가 불길에 타서 책상에 떨어져 죽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더워도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하는 편을 선택했다."

경제 회복도 시급하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경건 회복, 생명 회복 운동이다. 봄이 아름다운 건 생명이 약동하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생명 회복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교계협력본부장 s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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