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 “아버지 예수 믿게 해주세요” 말 배우면서부터 기도

[역경의 열매] 신경림 (2) “아버지 예수 믿게 해주세요” 말 배우면서부터 기도 기사의 사진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랐다. 교회도 안 다니셨을 뿐더러 어머니가 교회 가는 걸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어머니가 교회만 다녀오면 집 문이 잠겨 있어 고생을 했다고 한다. 밤중에 문을 안 열어줘 산에서 새댁이 홀로 밤을 지샌 적도 있다고 들었다. 결혼 전에는 전도사인 고모를 보고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는 줄 알았던 어머니. 매일 새벽마다 찬송가를 끼고 집 앞을 오가던 그 사람이 결혼해 보니 전혀 딴 사람이더라는 것이었다.

교회 문제로 두 분은 늘 싸웠다. 어머니의 성경책이 늘 새것으로 바뀌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이 발견됐다 하면 아버지가 구정물통에 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그 자리였다. 나에게도 늘 기도하라고 가르친 게 "우리 아버지 예수 믿게 해주세요"였다. 말을 배울 때부터 늘 그 기도를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흠씬 맞기라고 하는 날엔 나는 정말이지 속이 상했다. 하루는 그랬다. "엄마,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그러면 우리 아버지 예수 믿게 되겠지? 우리가 지금은 교회 다니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서 아버지 예수 믿게 되면 그때부터 교회 가자."

우리 아버지는 덩치가 컸다. 자전거를 한 손으로 번쩍 드는 거구였으니까. 어린 마음엔 어머니가 행여 큰 사고를 당할까 걱정됐던 것이다. 내 딴엔 꾀를 낸 건데 어린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참 중요한 게 많은데 목숨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단다." "뭔데요 엄마?" "그건 믿음이란다."

다 포기해도 믿음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까. 그러나 그 말씀은 언제나 나와 함께했다.

송도에서도 살았다. 아버지는 안 좋게 말하면 한량 같았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좋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돌아다니면서 길에서 못 먹는 걸인들은 전부 집에 데려왔다. 걸인을 봤다 하면 족족 집으로 데려와서는 밥을 먹였다. 어떤 사람은 재워 보내기까지 했다. 그럼 그 사람들이 밤 사이 우리집 물건을 훔쳐갔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각장애인을 데려오셨다. 길에서 구걸하는 그분에게 아마도 뭘 도와줄까 물어보셨던 모양이다. 눈이 하나라도 있으면 직장을 얻어 걸인 신세를 면할 수 있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길로 성모병원에 가서 자기 눈을 하나 빼준다며 덜컥 예약부터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울며불며 말렸다. 어머니는 그분이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돈을 챙겨 드렸다.

우리 아버지는 머리도 굉장히 좋았다. 장기를 하면 누구한테 지는 적이 없었다.

하지만 허구한 날 장기를 두고 사람들하고 어울려 지내다가는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 우리 가게와 집 문서를 잡히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세상에 무서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있다면 아마 당신의 딸인 내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 제일 소중한 하나는 '신경림'이었다.

38세. 아버지가 나를 품에 안은 나이다. 나한테는 엄청 잘하셨는데 어머니한테는 왜 그토록 모질게 구셨는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내가 아버지에게 가졌던 감정은 사랑과 미움의 복합적인 감정이랄까.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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