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오스카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오는 22일(현지시간) LA에서 열린다. 후보작 등은 일찌감치 발표됐고 봉투가 열리는 일만 남았다.

원래 아카데미상은 할리우드의 잔치. 하지만 전세계인의 영화 축제라 해도 무방하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미국인과 한 동네 사람 같은 영국인 외의 외국인들(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 대만의 이안, 프랑스의 마리옹 코티야르)에게도 상을 주는 바람에 그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또 그 권위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진정 권위가 있는 걸까. 적어도 미국의 영화평론가 데이브 커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오스카상 가운데서도 백미라 할 최우수작품상의 경우 끈질긴 전통 가운데 하나로 '최우수가 아닌 작품에 상이 돌아간다'는 점을 들었다.

1941년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을 제치고 수상한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한 예. 이 영화 역시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오늘날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대접받는 '시민 케인'이 더 뛰어난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런 예는 또 있다. 1939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을 받은 것은 놀랍지 않다 해도 후보작 가운데는 영화적으로 더 우수한 것들이 있었다. 존 포드의 '역마차', 프랭크 캐프라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등.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커에 따르면 외부 세계가 자신을 이렇게 봐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할리우드의 의도 때문이다. 즉 할리우드는 오스카상 초기엔 미국적 가치와 윤리 코드, 2차 대전 시기에는 애국심과 승전 의지, 1950∼60년대에는 TV와 차별화를 겨냥한 영화만의 장대한 구경거리를 우선시했고 그 후에는 스펙터클 외에 문학적 가치와 사회 비판, 성인 취향의 내용을 선호한다는 의도를 과시하려 했다는 것.

말하자면 아카데미 작품상은 대체로 예술적 성취도보다는 할리우드가 의도적으로 외부에 내보이려 한 나름대로의 목표에 종속돼 왔으며,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할리우드가 씌워준 색안경을 통해 '왜곡'된 오스카상에 갈채를 보내왔다는 얘기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그것 참, 하고 혀를 차고 싶어지지만 그동안 아카데미상에 가졌던 환상이 깨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