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6) 열악했던 백령도 사역 임신중독증으로 죽을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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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백령도에 대신 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첫째가 두살이었고 둘째는 임신 중이었다.

백령도의 상황은 열악했다. 예배 드릴 장소도 마땅찮아 남편은 교회를 짓는다고 했다. 백령도엔 물이 귀했다. 관저 안에는 수도관이 없어 모든 물을 동네 공동우물에서 길어와야 했다. 나는 임신한 채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수많은 군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곤 했다. 군인들이 교회 공사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둘째아이 출산 예정일은 12월이었는데 무리한 탓인지 9월에 벌써 극심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군인병원으로 갔더니 백령도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모두 작전 나가고 군의관 한명만 있는 병원에서 남편과 큰아이는 밤새 기도했다. 다음날 진통이 어느 정도 잡혀 12시간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시댁으로 향했다.

진통으로 갑자기 육지에 나왔지만 시댁에서 병원 가라는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병원 가겠다고 말을 못한 채 몇 주를 지냈다. 친정아버지 생신이 되어 친정에 갔다. 친척들은 나를 보더니 반기기는커녕 얼굴빛이 사색이 돼서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 독촉했다. 몸이 너무 붓고 보기에 이상하다는 것이다.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줌마. 대학도 나온 아줌마가 왜 이제야 병원에 왔어요. 대학 나온 사람이 왜 이렇게 무식해요. 어떻게 여지껏 참았어요."

사실 나는 날마다 머리가 너무 아파 진통제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었다.

의사는 머리 아프다고 약을 먹으면 죽는다며 오늘이라도 머리가 아프면 당장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알고보니 임신중독증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날 집에 가서 자는데 밤중에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자는 시동생을 깨워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가는데 혈압이 너무 올라 그런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에 가자마자 수술을 하고 둘째를 낳았는데 그때가 11월이었다. 한 달 일찍 출산한 것이다. 나는 나흘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중에 깨어나 복도로 걸어나오니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린다. "저 아줌마 살았네. 못 사는 줄 알았더니."

내가 임신중독인 탓에 아이에겐 충분한 영양이 가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남편은 백령도에 태풍이 불어닥쳐 내가 퇴원한 뒤에야 우리를 보러 올 수 있었다. 엄마 품에 한번도 안겨보지 못한 채 태어나자마자 이마에 커다란 주삿바늘을 꽂고 혼자 누워 있는 아이를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며 우린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님이 지켜주신다고 '예지'로 지었다.

세월은 또다시 흘렀다. 나는 전업주부로 두 아이를 양육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도 제대하고 서울의 남산교회에 부목으로 목회하게 됐고 나는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봉사하고 있었다. 큰애가 유치원에 다닐 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이화여고에서 온 전화였다. 성경교사 자리가 났는데 와서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솔깃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실 교사 자격이 없었다. 교직 과목을 이수했어야 했는데 교사가 되기 싫어 이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나한테 연락이 왔던 것이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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