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흉악범의 印稅타령 기사의 사진

우선 영화 이야기 하나. '15분'(2001).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날아온 두 범죄자가 잔혹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모든 범행을 캠코더에 담는다. TV방송국에 팔기 위해서다. 그래서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변호사를 사서 정신이상 판결을 받아 풀려난다. 그 다음엔 책을 출판하고, TV에 출연해 유명 인사가 되고 부자가 된다. 그게 두 범죄자의 꿈이자 계획이다. 영화제목 '15분'은 두 범죄자가 생각하는, 상업주의 매스미디어 천국 미국에서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지는 시간이다.

어떤가. 누가 생각나는가. 그렇다. 연쇄살인범(엄밀히 말해 혐의자라고 해야 옳지만 자백에 증거까지 찾았으니 상관없지 싶다) 강호순이다. 자신의 범행을 책으로 써서 인세를 아들한테 주고 싶다고 한 그의 말이 예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강호순의 '인세 타령' 후 그의 범죄행각이 출판되기는 사회 분위기상 어려울 것이라는 예단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묘해서 '나쁜' 책이라고 욕하면서도 오히려 더 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또 흉악범을 우상시하는 희한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어서 인터넷에는 이미 '강호순 팬카페'라는 것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돈벌이에 용감한 출판업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나쁜’ 책이라고 욕하면서도 오히려 더 보고 싶어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영화처럼 흉악범들이 흥미 위주의 상업적 매스미디어 노출을 통해 '스타'로 떠오르고 자신의 범죄행각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은 이미 현실이다. 그래서 그 같은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에서는 일찍이 이른바 샘의 아들 법(Son of Sam Law)이 제정됐다.

이 법은 범죄자들(어떤 법에는 가족 친구 이웃에 제3자까지 포함된다)이 책 출판, 영화화 등 자신의 범죄를 팔아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하고, 때로 그렇게 해서 얻은 이득이 있다면 당국이 몰수해 범죄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한 유사법의 총칭이다. 1977년 자칭 '샘의 아들'이라는 연쇄살인범 데이비드 버코위츠가 출판사로부터 큰돈을 받고 자신의 범죄를 책으로 내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뉴욕주에서 처음 입법함으로써 샘의 아들 법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이래 42개 주와 연방정부가 비슷한 법을 제정했다.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뉴욕주 법은 91년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다.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게 이유였다. 즉 뉴욕주 법에 따르면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X의 자서전이나 심지어 성 아우구스틴의 참회록도 대상이 된다는 것. 이에 따라 뉴욕주 등은 법을 수정해야 했지만 기본 뼈대는 살린 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강호순 같은 흉악범들이 다시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또 연쇄살인범이 판치고, 이들을 스타 대접하는 우중(愚衆)이 기승을 부리는 미국식 세태가 더 이상 남의 일만도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판 샘의 아들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현재 국내에선 범인의 유전자 정보 관리, 얼굴 등 신원 공개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범죄자가 범죄를 팔아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판 샘의 아들 법을 만든다 해도 조심할 것은 있다. 일부 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이 법이 스스로 범죄에 연루된 '내부고발자'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앗아감으로써 특히 공익에 중요한 범죄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만큼 입법할 때 이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 또 최근 미국에서 사회문제화된 '머더러빌리아' 붐(흉악범이 그린 그림이나 범행사진 등을 팔고 사는 행위)에서 보듯 샘의 아들 법에도 맹점이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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