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판정을 받았거나 자식이 희귀병에 걸렸을 때, 출근한 남편이 교통사고로 횡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런 사태에 접한 이웃이나 친구가 곁에 있다면…. 혹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고통과 슬픔에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스스로를 슬픔으로 몰아넣는 것은 이제 그만두세요. 하나님은 뭔가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세요. 하나님은 참으로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천국으로 데려간답니다."

실직 당한 가장에게, 입사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는 젊은이들에겐 또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까. "크고 멀리 보세요. 지금 경험하는 절망감이 당신을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위해서 기도할게요." 그런데 과연 이런 말에 힘이 있을까.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유대교 랍비 해럴드 쿠쉬너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의 장남 아론은 3세 때 프로게리아라는 조로증에 걸려 14세에 요절했다. 그는 그때의 비통함과 절망감을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1989)'에서 담담하게 소개한다.

쿠쉬너는 '선한∼'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신자든 목회자든 이웃의 비통과 절망을 접할 때 함께 아파하기보다 하나님을 앞세워 설교하는 데 더 힘쓴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고통과 비통, 그리고 그 때문에 솟구치는 울분에 대해 설명하려 들기보다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식을 앞서 보내면서 그동안 자신의 목회 활동도 위로를 빙자해 설명을 늘어놨었고 고통 가운데서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명목으로 그만 아파할 것을 강요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기도가 선한 이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보증수표라기보다 오히려 고통 중에 있는 이웃과 연결해주는 마음의 고리라고 말한다.

요즘 경기 침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서민들의 삶이 말이 아니다. 이에 한국교회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나섰다. 금전적인 도움, 희망을 담은 설교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마음놓고 울분을 터뜨릴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됐으면 좋겠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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