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7) 남편 고집에 성경교사 접고 미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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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하고 싶었다. 사실 그 전에 새가정사와 선명회, 세브란스 교목실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번번이 거절당해서 '난 일을 못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성경 과목은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고 해서 1981년 성경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가르치는 일은 정말 재밌는 일이었다. 학생들도 잘 따라서 날마다 신이 났다.

남편은 내가 성경교사를 하는 동안 매일 새벽 영어학원에 다녔다. 남편은 유학갈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권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공부 다 마칠 때까지 아이들 데리고 한국에서 잘 살고 있을 테니 유학을 다녀오라고 남편한테 말하곤 했다. 84년 1월 남편은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서는 다 같이 가지 않으면 유학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사정을 말하는데, 아이들이 우는 바람에 교감 선생님이 달려오고 난리가 아니었다. 어떤 학부형은 아이가 앓아 누웠다고 안 가면 안 되냐고까지 했다. 나도 가기 싫었다. 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학생들에게 약속했다. "너희는 못 가르치지만 언젠가 돌아와 너희 후배들은 가르칠게."

84년 나이 서른에 남편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 타본 비행기다. 애 둘을 데리고 있는 대로 바짝 긴장해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내 자리로 왔다. 커피를 마시겠냐고 하는데 알아듣고 "예스(Yes)"라고 했다. 뭐라고 또 하는데 그건 못 알아들었다. 당황하니 더 안들렸다. 대충 지나가면 될 텐데 스튜어디스는 그냥 버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통역을 부탁했다.

내용인 즉, "크림 줄까, 슈가(설탕) 줄까"였다. 너무 창피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프리마'라 안 하고 크림이라 해서 그랬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자기합리화에 들어갔다. '가면 접시만 닦을 텐데, 영어 못하면 어때. 나는 공부할 거 아닌데. 공부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남편은 공부하면서 톨리도 오하이오라는 데서 교회를 맡았다. 공부하랴 목회하랴 바쁜 남편을 돕기 위해 성경공부반을 시작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성경 말씀을 나누는 것이었다. 교인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런 성경해석은 처음 들어봤다며 내 수업을 녹음해 서로 돌려 듣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는 우리 큰아이 학교 학부모회의에 참석했다. 가 보니 선생님은 전부 여자이고 교장 선생님 한 분만 남자다. 우리 아이들이 남자와 여자 선생님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야 할 텐데 여자 선생님한테만 교육을 받다니…. 그런데 그 순간 한국교회가 떠올랐다. 한국교회에는 남자 목사님들만 있다. '하나님이 엄마와 아빠를 주신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니 엄마나 아빠 둘 중에 하나만 있게 만드실 수도 있었을 텐데. 둘 다 있게 만드신 것은 우리들에게 여자와 남자의 영향이 골고루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하나님의 뜻 아닐까? 그렇다면 여자 목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정리=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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