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순만] 도킨스, 무엇을 즐길까요 기사의 사진

종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해프닝이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 주년 기념행사와 맞물린 이벤트다. 가장 도발적인 것이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영국인도주의협회(BHA)가 전개하고 있는 버스 광고운동이다. 올 초부터 영국 전역에 등장한 버스 광고는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고 권유하고 있다.

이 광고는 지구촌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도 환영의 글이 번지고 있다. 도킨스는 버트런드 러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급 무신론 논객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놀랍도록 단순 명쾌하고 논쟁적인 그의 저작들은 종교 소멸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이번 광고도 명쾌하기 이를 데 없다. 신이 없으니 걱정 말고 즐기라는 것이다. '아마도(probably)'라는 부사를 내세워 신중함을 과시하긴 했지만 결론은 매우 선동적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광고는 매우 취약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즐기라는 것인지가 불분명하고, 그로 인해서 이 광고는 창조론의 사유체계를 필요로 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즐기는 것의 요체는 인간의 양식(良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인간의 양식을 벗어날 때 마음 속에 즐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킨스는 신이 없으니까 사람을 해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의 범법행위를 즐기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혹당하고 있지만 실행하기에는 양심에 꺼려지는 것, 즐기고 싶지만 하나님이 볼까 봐 즐기지 못하는 것을 즐기라는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신이 없으니까 걱정 말고 즐기라'는 것은 신 앞에서의 조심스러움 혹은 걱정스러움을 내포한 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인간이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정당성을 부여해 준 '바른' 것들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 너머의 것을 실행하고 즐긴다는 것은 병리적일 뿐이다. 신이 없으면 그 '바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누군가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금세 그의 말을 바꿔 자신에게 가한 폭력은 바르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논증가로 꼽히는 C.S. 루이스는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의 판단이 존재하는 것을 '인간본성의 법칙(Law of Human Nature)'이라고 풀이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은 양심의 자극을 받는다. 배신자를 이용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그 배신자를 경멸한다. 우리가 다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칙이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론이 말하는 우연 속에도 일련의 질서와 정신(mind)이 있다는 것, 거기에 생명력이 있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것, 우주의 배후에 있는 그 선함과 교통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그 배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본다. 인간의 즐거움은 그 선함의 가치와 함께 갈 때 누릴 수 있지, 그것을 넘어서면 누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도킨스와 그의 친구들이 말하는 무신론의 즐거움은 종교 미워하기 같은 감정적 즐거움은 찾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하는 구체성 앞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우연으로 존재의 근간을 설명하고자 하는 진화론은 논란으로 인해 지식체계를 넓혔다는 점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는 극히 단순한 논리다. 그래도 '걱정 말고 즐겨라'고 권유할 작정이라면 무엇을 즐길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임순만 종교국장 so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