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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로 인해 이제는 인천공항∼프놈펜, 인천공항∼시엠립 간을 국적기가 하루에도 몇편씩 오갈 정도로 가까워진 캄보디아. 하지만 캄보디아는 아직도 극악무도한 학살이 자행됐던 야만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악랄하게 자행된 크메르루주 학정은 나치의 유대인 살육을 방불하는, 어느 면에선 외려 더 끔찍한 참극의 진앙이었다. 월남 패망에 이은 공산화 도미노에 따라 1975년 4월17일 '미국의 앞잡이'로 비난받아온 론놀 정권을 무너뜨린 크메르루주는 민중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수도 프놈펜에 입성했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 건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마오이스트 공산주의자들은 정권 탈취 후엔 태도를 돌변해 총칼을 마구 휘두른다. 모든 지식인과 화이트칼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집단 처단했다. 단지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손이 곱다는 이유로, 이른바 '먹물 직종'에 종사했다는 이유로 등.

크메르루주의 학살 행위는 1979년 훈센 현 총리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지속됐다. 무려 200만명을 처형으로 혹은 굶겨서 죽인 이들의 야만 행위는 롤랑 조페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금도 프놈펜 시내의 투올슬렝 감옥과 프놈펜 교외에 산재한 전시관엘 가면, 그들의 잔인했던 고문 실태와 잔혹했던 집단 학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희생자들 중엔 호주인 기자 등 외국인도 다수 들어 있다.

마침 오늘부터 킬링필드를 자행했던 주역 5명에 대한 심판이 시작된다. 그 중 가장 죄질이 나쁜 자는 통상 '더치'로 불려온 카잉 구엑 에아브(66). 전직 투올슬렝 교도소장이다. 그는 1만6000여명의 수감자 중 단 14명만 살려줄 정도로 잔혹한 고문과 처형을 일삼았다.

크메르루주의 2인자로 군림했던 누온 체아와 국가주석 케에우 삼판, 외무장관 렝 사리와 그 부인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작 폭정 주역인 폴 포트는 1998년 훈센에 저항하다 사망했고 그의 하수인이었던 타 목도 2006년 감옥에서 숨졌다. 하지만 허탈하지 않은가. 살아 남은 자들을 징치한다고 해서 희생자들이 생환할 것도 아니고….

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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