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10) 아르바이트 하면서도 시험 성적은 ‘A’

[역경의 열매] 신경림 (10) 아르바이트 하면서도 시험 성적은 ‘A’ 기사의 사진

몸이 힘든 것은 둘째 치고 내 손이 망가지는 게 가장 걱정스러웠다. 감신대에 다닐 때부터 오르간을 쳤는데 이렇게 혹사시키니 다시는 오르간을 못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 나는 공부도 하고 있었다. 청강하던 과목이었는데 단 한 과목이었지만 열심히 들었고 시험도 치렀다. 죄다 외웠던 걸로 기억한다. 시험 성적은 'A'였다. 학교에선 내 점수를 보더니 토플이 없어도 되겠다며 입학을 제안했다.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으니 제안을 감사히 수락하는 게 당연했다. 내가 들어야 할 과목은 세 과목으로 늘었다.

남편이 물었다. "나도 접시 닦을까?" "안 돼. 당신은 공부할 사람이니 좋은 성적 유지해야 돼요. 난 그냥 하는 거니 아무러면 어때요."

먼저 공부를 시작한 남편의 졸업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돈이 없으니 신학박사 과정에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자니 그간 들인 공이 아까웠다. "여기에서 목회 자리를 알아봅시다." 나와 남편은 목회 자리를 찾아 나섰다.

미국에서 '이승우'라는 내 남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미국교회에 다니고 있던 우리는 미국 감리교 감독님이 우리 교회에 설교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목사님을 찾아갔고 미국 감독님을 만나 얘기 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목사님은 감독님이 너무 바빠서 따로 만날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인사를 하고 싶다면 복도에 서서 기다리다가 인사하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 봐야지. 나는 복도에 기다리고 섰다가 지나가는 감독님을 붙잡았다. 그러곤 다짜고짜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남편이 한국 감리교 목사인데 여기서 졸업할 때가 됐습니다. 목회를 참 잘하는데 목회지를 주실 수 없을까요?" 감독님은 지나가는 말이라도 이력서를 보내보라고 하셨다. 남편의 이력서와 몇 분의 추천서가 감독님께 보내졌다.

1986년 1월2일 아침, 어떤 미국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위스콘신에 있는 감리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때 만난 감독님이 우리 남편 이력서와 추천서를 50개 연회 모든 감독한테 보내줬던 것이다. 자기 연회에는 이승우라는 사람이 갈 교회가 없으니 당신네 연회에 자리가 있으면 이 사람을 청빙하라고 했던 것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에이전트'는 곳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위스콘신 연회에 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남편은 얼마 안 있어 인터뷰를 하러 갔다. 남편은 가뿐히 인터뷰를 통과했다. 나는 애슐랜드 신학대에서 겨우 2학기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도 남편이 위스콘신으로 가니 나도 따라가야 했다. 위스콘신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감리교 신학교를 찾아보니 시카고에 있는 게렛이라는 곳이 나왔다. 게렛 신학대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또 토플이 문제였다. 토플 성적이 없어 지원이 불가능했던 것. 게렛 신학대에서는 토플을 보고 오라고 했다. 나는 애슐랜드 때처럼 게렛에 내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한국 목사 부인입니다. 처음부터 제가 학생 신분으로 그 교회에 가면 모르지만 목사 사모가 나중에 공부하겠다고 하면 성도들이 아주 싫어할 겁니다. 한국교회는 목사 사모가 공부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당신 학교에서 지금 날 받아주면 내가 공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아예 접게 될 것 같습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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