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종교계의 큰 별이 졌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노환으로 선종(善終·서거를 뜻하는 가톨릭 용어)했다. 김 추기경은 선종 순간에도 지켜보던 교구청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 추기경의 선종은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큰 슬픔이고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고인이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로서 목회를 꾸려온 세월은 한국전쟁을 비롯해 4·19 혁명, 5·16 쿠데타, 10·26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현대사의 격동기와 바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인의 강직함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위세등등한 시절에도 고인은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을 품어안고 위로하는 한편 독재정권을 향해서는 일침을 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

1987년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6·10 민주항쟁에서도 당시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맡았던 김 추기경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는 종교계의 당찬 저항이자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민주화 쟁취와 더불어 고인은 우리 사회의 귀중한 표상으로 자리매김된다. 그 이후에도 그의 민족을 위한 헌신은 점점 더 활발해져 갔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한 뒤엔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의장으로, 2001년 사이언스 북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생명21운동 홍보대사 등을 맡아 지난해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헌신했다.

김수환 추기경, 큰 어른은 우리를 떠났지만 사회를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려고 애써 왔던 그의 민족 사랑과 의지는 우리에게 이제 숙제로 남았다. 그의 선종을 애도하기 앞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감당해야 할 몫을 곱씹어 보는 것이 고인에게 최대한의 조의를 표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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