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11) 밀린 집세·학비에 발목 잡혀 편입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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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받아달라는 나의 억지에 게렛 입학 관계자는 "가르친 교수 이름 둘을 대라"고 말했다. 나는 애슐랜드 교수 2명의 이름을 댔다. 얼마 후 게렛 입학 관계자가 다시 전화를 했다. "당신 교수가 우리 졸업생인데 당신 안 받으면 나중에 후회할거라 해서 우선 받기로 했다." 단 단서를 붙였다. 첫 학기 안에 토플 시험을 봐서 550점을 받아오는 조건이다. 나는 부랴부랴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고 남편이 공부했던 토플 책을 찾아내어 틈틈이 토플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식으로 학교에서 뗀 성적증명서를 게렛에 제출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성적증명서를 떼주지 않는 것이었다. 빚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참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애슐랜드에 살던 학교 아파트 임대료도 한참 밀렸고, 내 등록금은 물론이고 남편 등록금도 못낸 상태였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뒷전으로 미뤘던 일이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하늘이 노랬다. 식당에서 접시도 닦고 솥도 닦고 홀 청소까지 했지만 먹고 살기도 바빴기 때문에 수중엔 한푼도 없었다.

나는 우리가 다니던 미국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찾아갔다. 게렛으로 전학간다고 이제 이 교회 떠날거라고 이미 말했던터라 이제 그럴 수 없다고 다시 다니겠노라고 말씀드리러 갔다. 목사님은 내 말을 들으시고는 교회에서 장학금 용도로 마련한 선교비가 있다며 500달러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목사님 감사해요. 하지만 500달러 가지고는 해결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였으면 하네요."

나는 평소처럼 일터에 나갔다. 그날은 홀 청소까지 하는 날이었다. 식당에서 즐겁게 웃으며 식사하는 나보다 한참 어린 한국 학생들 발밑을 청소하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번도 그런 일로 자존심 상하거나 마음 아파본 적이 없었는데, 늘 웃으며 인사하며 청소했는데 그날따라 '이 학생들은 이렇게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데, 왜 난 죽으라고 일해도 안 되는걸까'라는 원망 섞인 푸념이 맴돌았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부총장이 나를 보자고 한다. 어제 만난 미국 교회 목사님이 부총장한테 전화를 해서는 "신경림 학생 좀 도와주라"고 했단다. 부총장은 돈을 다 갚지 않으면 성적증명서를 떼 줄 수 없다고 했다. 규칙을 위반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해한다고 했다. 남편 공부가 아직 한 학기 남았으니 그냥 학교 다니겠다고 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부총장은 그동안 밀린 나와 남편의 등록금을 장학금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놀라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 나에게 아파트 임대료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빌려주겠노라 덧붙였다. 나는 하도 고마워 부총장님께 남편이 첫달 월급을 타는 대로 다 갚아드리겠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부총장님 하는 말씀이 "그럼 뭐 먹고 살려고. 남편 졸업할 때까지 5개월로 나눠 갚으시오"였다.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게렛 신학교에서 위스콘신의 우리집까지는 차를 이용해 편도로 한시간반 거리. 왕복 3시간이었다. 게렛 신학대 부총장은 "하루 세시간씩 운전하면서 공부는 못한다. 당신과 같은 동네 사는 미국 학생들도 학교에서 2∼3일 머무르며 공부한다"고 나에게 누차 학교에서 머물며 공부할 것을 권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당신이 모르셔서 그렇죠. 한국 여자는 외박하는 거 아닙니다. 저는 이대로 다닐게요."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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