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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치매로 몇 년을 고생하시다 노환까지 겹쳐 1년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힘들게 보내셨을 어머니, 그리고 이를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던 자식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문상 자리에서 고인의 투병이 화제에 올랐다. 친구는 하루하루 어렵게 연명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많은 고민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 "많이 힘드시죠. 호흡기 뗄까요?"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보여드렸다. 그런데 말은 고사하고 의식도 오락가락하는 어머니는 그걸 보자마자 안색이 달라지더란다.

자식으로서 몹쓸 짓을 했노라고, 그때의 어머니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자책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중환자실에 조석으로 출근했지만 그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 연락이 와 가 보니 맥박은 완전히 멈췄지만 인공호흡기만 홀로 들썩거리는 게 무척 거슬렸다고 한다.

이런 사례도 있다. 대장암 수술 후 5년 만에 폐로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던 중 거부 반응 때문에 입원을 하기에 이른 한 어머니. 어머니는 그날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선언했다. "상태가 악화되더라도 중환자실엔 안 갈란다. 자연스럽게 마감하고 싶구나." 그리고 두 달 만에 어머니는 가셨다.

존엄사(尊嚴死). 죽음에 직면한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하기 위해 생명유지조치를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위의 두 사례 모두 존엄사와 관련이 있다. 앞의 것은 환자의 가족이 존엄사를 의식한 반면 뒤의 것은 환자 자신이 결정했고 처음부터 생명유지조치를 거부한 점이 다를 뿐이다.

친구가 시도하려던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난주 법원 판결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법원은 존엄사를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존엄사의 남용을 경계하며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재판이 상고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죽음은 살아있는 이들의 큰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그제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있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7월 입원한 후 최근엔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과 패혈증이 악화됐지만 생명연장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조용히 영면했다. 고인이 그걸 원했단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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