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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성지순례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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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일 동안 구약시대의 기독교 성지 몇 곳을 여행했다. 하나님은 차든지 더웁든지를 원하시지만(요한계시록 3:15) 내 믿음은 햇수만 많지 미적지근함을 먼저 고백한다.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굳이 나의 첫 '성지순례'를 소재로 삼은 것은 부족한 대로 깨달음이 있어서다.

BC 600년 무렵의 선지자 하박국에 관한 성경의 하박국편(編)은 단 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하박국 묘 방문을 계기로 나는 그 짧은 말씀 속에 한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한 기독교 원리가 오롯이 담겨 있음을 새로 발견했다. 그것으로 기독교를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구절마다 감동으로 다가왔다. 믿음이 튼실한 분들에게야 일상사에 지나지 않을 일을 주옥에 비할 바 아닌 생명의 말로 반추하게 된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많이도 보고 들은 구절이다. 보석 같은 말씀은 더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한국이 세계 이슬람화의 표적 1호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귀국길에서는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을 했다. 무턱댄 간증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비행기 탑승 전, 손님들은 기체 결함을 손보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2시간쯤 출국장에서 대기했다. 찜찜한 기분으로 탑승한 사람들은 이륙 후 1시간이 지났을 즈음 그 공항으로 비행기가 되돌아가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갑작스레 부산해진 승무원들한테서 '기술적 문제'로 회항중임을 확인한 것이다. 기내 분위기는 납덩이 같았다. 죽음 같은 순간이 삶과 수없이 교차했다. 엄청난 밀도의 생각들이 밀려왔다. 아, 사람의 일이란…. BC 5세기의 에스더와는 경우가 달랐지만 기도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로 귀결됐다.

나로서는 신대륙 발견에 버금갈 깨우침이 하나 더 있다. 이슬람권의 세계 이슬람화 전략을 체감한 것이다. 적잖은 크리스천이 이미 깨어 있는 터라 좀은 민망하지만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해볼 필요도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이슬람권의 왕성한 인구 증가와 오일 머니 위력 뒤켠에서 영국인 커뮤니티가 급속히 쇠락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 수출국' 영국은 전체 인구의 4%에 이른 회교도 쪽에 영적(靈的) 주권을 이양하는 중이다. 노인만 일부 남아 미래를 상실한 교회는 속속 회교사원으로 바뀌고, 술집 간판을 내거는 교회도 속출한다.

한국은? 궁극적으로 더 나을 게 없다. 국내 이슬람교도는 현재 전체 인구 4800만 중 약 15만명. 이슬람화 표적 1호로 한국이 점지됐다는 말이 나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종교사회, 수입 중동원유에 기반한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 막강한 오일 머니, 이슬람 쪽에 거의 3배 뒤지는 1%대 인구증가율 등이 배경이다. 대다수 기독교인이 여기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은 더 문제다.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은 종교 간에도 화해를 통한 평화 공존의 시대라며 냉소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설(邪說)과 그 추종자들이 장악하는 세상은 종국에 숨통이 막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이것은 정치 외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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