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305장<통405장>

[내 삶의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305장<통405장> 기사의 사진

1994년 2월19일 선친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은 한 이단자의 칼에 맞아 눈물도 한숨도 없는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15년이 지난 올해 선친의 추모예식 찬송으로 그분이 좋아하셨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405장)을 택했다. 이 찬송은 선친의 신앙고백이자 나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선친은 이단사이비에 빠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그로 인해 정작 자신의 생명은 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연구와 강연활동에서 수많은 협박과 폭력을 경험했다. 74년 동방교는 선친을 청부살인하려 했고, 85년에는 승용차에 설치됐던 폭탄이 터져 실명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87년 충북 보은에서는 집회장에 난입한 통일교도들 때문에 골절상을 입었고, 92년 종말론 소동 당시에는 괴한들에게 피습당해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결국 이단자의 폭력으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선친은 육신의 생명을 잃은 대신 그토록 사모하던 '영원한 생명'을 찾았다.

나는 선친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젊은 날 지치도록 먹어야 했던 밀가루를 다시 입에 대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가정의 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어려움은 계속됐고 이로 인해 나는 초등학교를 일곱 번이나 옮겨야 했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까지도 단칸방을 전전해야만 했다. 물론 이단사이비들의 협박은 우리 가족 삶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선친은 이단과의 싸움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과 고난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항상 경험했다. 이런 선친이 우리는 늘 자랑스러웠다. 선친은 자주 "밥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우리 가족에게 삶의 어려움은 서로를 단단하게 엮어주는 사랑의 띠였고 '주님의 은혜'였다.

선친은 자신의 장기와 시신 모두를 기증해 무덤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본향에서' 온 가족이 다시 만나 오순도순 즐겁게 이야기할 부활의 그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선친은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자신이 좋아했던 찬송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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