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보면서도 못 배우는 사람들 기사의 사진

"종교계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도자이시며, 국민을 가장 사랑한 국민의 위대한 친구가 떠나서 매우 슬프다."(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었고, 어두웠던 시절에는 빛이었고, 그분의 삶은 사랑이었다."(정세균 민주당 대표)

"고비 고비마다 세상의 이치와 시대정신을 지켜온 진정한 원로로서 선종 이후에도 남기신 정신적 유산은 길이 빛날 것이다."(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

"살아있는 양심의 대변자인 김 추기경의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김유정 민주당 대변인)

정치인이 그렇게 좋은 말을!

아, 정치인들도 아주 좋은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이건 정말이지 새로운 발견이다. 이렇게 진심으로 남을 존경할 줄 알고, 아름다운 말로 남의 품격과 업적을 기릴 줄 아는 사람들임을 이제까지는 왜 몰랐을까.(특정 개개인이 아니라 유력정당 대표와 대변인이라는 상징성을 빌렸음을 이해하시길)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틀 후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이 있었다. 어느 의원이 총리에게 따지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의 시정요구를 받아들여 사이버 상에서 삭제케 한 글들이라는 게 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비판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쥐박이, 땅박이, 2MB와 같은 표현들과 비판적인 패러디가 대부분"이었다고 굳이 예를 들었다.

기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너무 흔해서 별 느낌이 없게 된 표현들이다. 그렇다 해도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서운하고 불쾌할 것이다. 이런 모욕적인 표현으로 비난·조롱하는 것은 대통령을 싫어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을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서라고 짐작된다. 장난 삼아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유감스런 현상이다.

그 의원의 입장에서는 정부 여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모욕죄'의 부당성을 강조하려 예로 든 것일 뿐이라고 할 법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런 표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을까? 지난 정부 때 대통령을 지칭하던 그 모욕적인 별명들을 잊지 않았을 텐데. 당사자 또한 장관으로서 온갖 들을 말 안 들을 말 다 들은 기억을 가졌을 것이면서….

말은 나온 곳으로 되돌아간다

대통령을 한껏 조롱하고 정부 정책을 격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이를 법으로 막으려 해서는 물론 안 된다. 사이버모욕죄가 그런 배경을 가지고 추진되는 것이라면 반대자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인식을 전제한다고 해도 사이버 표현공간이 험구(險口) 악구(惡口)로 도배질되는 사태를 심상하게 봐 넘기기는 어렵다.

차제에 정치권 인사들이 정말로 뼈아프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아냥거림 조롱 욕설 등은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다. 정치언어가 험해지면 정치는 독해지고 민심은 각박해진다. 이는 인간 이성의 퇴행과정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 우리 국민을 도대체 어디로 이끌어 가려는 것인가.

정치인들이 김 추기경의 고결하고 위대했던 삶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이분을 따라 살기는 거부하는 모습들이다. 한 위대한 인물의 축복된 사후를 직접 목격하면서도, 그래서 더욱 큰 존경을 표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의 사후는 한껏 처량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정적에게 쏟아지는 매몰찬 비난, 모욕적인 야유를 즐기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이에 바로 자신을 겨냥한 말의 독화살들이 다투어 활시위를 떠나고 있음을 깨달으시라.

논설고문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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