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과연 큰 어른이었다. 품은 깊고 무릎도 넓었다. 무려 100만명이 직접 문상하며 먼 길을 배웅했다.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당에서는 30초 가량의 짧은 만남을 위해 3시간을 추위 속에서 기다렸다. 성당 주변에 늘어선 행렬이 2㎞에 이르렀지만 추념의 예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국민들 스스로 국민장의 풍경을 만들어 낸 초유의 경험이다.

고인이 남긴 열매도 풍성하다. 경제위기와 갖가지 갈등으로 상처 투성이인 우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줌으로써 사랑의 화톳불을 지펴 올렸다. 그 소박한 말 속에 담긴 메시지는 큰 울림을 낳으면서 사랑과 감사의 바이러스로 퍼져 나갔다. 모처럼 세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거인을 잃은 상실감이 충만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일치의 가르침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남녀노소 이념 지역 종교 정파를 넘었다. 대통령부터 유엔사무총장, 기업인, 어린이, 노숙인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고인이 걸었던 길을 우러르고 또 따르고자 했다. 겸손과 용기와 청빈. 그러면서도 소탈한 삶은 만인에게 교과서로 다가섰다. 화해하고 위로하며 이루어야 할 통합의 과제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고인이 들려준 나눔의 노래는 성찰을 일깨우는 워낭소리였다. 당신 눈에서 떼낸 각막으로 앞 못 보는 2명에게 빛을 선사하며 본을 보였더니 수많은 제자들이 뒤따랐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 가수 장윤정씨를 비롯해 자기를 기꺼이 내놓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나눔은 삶의 근본적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눔은 희생을 낳고, 희생은 다시 용기로 이어져 세상을 긍정의 물결로 덮을 힘이 있다. 실로 값진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오늘 아침 우리와 작별한다. 이런 어른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다. 거룩한 삶만큼이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면서 성자의 넉넉한 얼굴을 떠올린다. 그는 떠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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