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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정원교] 수사용 모조 지폐


1960년대 말에 나온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는 은행 강도의 삶을 참 인상적으로 그렸다. 주인공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는 낭만적이면서도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명장면이 여럿 있다. 비오듯 퍼붓는 총탄 소리와 함께 정지된 화면, 그리고 두 사람. 라스트 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열차 강도를 할 때 달러 지폐가 허공에 휘날리던 광경도 압권이었다.

우리나라 영화에도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타짜'의 주인공 고니가 기차 안에서 폭력배와 싸울 때였다. 돈 가방이 열리자 1만원권이 수도 없이 공중으로 흩날렸다. 두 영화에서 촬영에 쓴 돈은 물론 가짜였다. 이처럼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든 돈은 '모조 지폐'로 불린다. 처음부터 시중에 유통시키고자 만드는 가짜 돈(위조 지폐)과는 다른 것이다.

이번에 촬영용뿐 아니라 수사용 모조 지폐도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경찰이 처음 모조 지폐 1만원권을 만든 때는 2005년. 대전에서 주부 납치사건이 발생한 뒤였다. 하지만 경찰은 그동안 이 사실을 쉬쉬해 왔다. 경찰은 최근 가짜 돈을 범죄 수사에 활용하고도 "인쇄 상태가 조악하다"느니 하면서 공개를 극구 꺼렸다. 비슷한 범죄를 수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한 탓이다.

모조 지폐는 진짜 돈과는 좀 차이가 나게 만들어야 한다. 모조 지폐로 금융 질서에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번 납치 사건에 쓴 모조 지폐는 진짜 1만원권보다 1㎜ 정도 크다. 각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무지갯빛 홀로그램 등 위조방지 기능도 없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반인이 육안으로 진폐와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수사용 모조 지폐와 관련한 아무 규정도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가짜 돈 유통에 대비한 안전 장치는 전혀 없다. 모조 지폐 제작의 책임있는 주체가 경찰인지, 한국은행인지도 구분이 안 돼 있다. 마침내 납치범은 가짜 돈을 이용해 진짜 돈 400만원을 수중에 넣기에 이르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모조 지폐 매뉴얼'을 체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짝퉁'이라고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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