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13) 박사과정 입학시험 날 열병 시험도 안치렀는데 합격통지서

[역경의 열매] 신경림 (13) 박사과정 입학시험 날 열병 시험도 안치렀는데 합격통지서 기사의 사진

게렛에서는 마지막 학년을 남기고 학생들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교수님 두 분이 나를 심사했는 데 내게 박사과정을 밟을 것을 권유했다.

"아니오,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저는 공부 잘 못합니다."

"당신 평균학점이 4.0만점에 3.88인데도?"

"그거는요 제가 장학금을 못 받을까 봐 공부해서 그런 거고요. 아무튼 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닙니다."

두 교수는 한참을 웃기만 했다. "그래도 해보지?"

"아휴, 아니에요. 안 해요."

나는 사실 공부보다 목사 안수 받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엇다. 여자 목사로 목회하는 게 내 소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사 안수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박사 학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인 학생들이 내 얘길 들었다.

"공부 안 하셔도 되는데요, 입학은 하시죠."

그때까지만 해도 게렛에서 외국 학생이 석사 학위 하나만 받고 박사 과정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최소한 석사 학위 2개는 따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한인 학생은 내가 선례를 남기면 다른 한인 학생들한테도 기회가 돌아갈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진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 과정을 밟으려면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를 봐야 했다. GRE 시험일이 됐다. 나는 이날 시험을 치르기는커녕 병원에 입원했다.

류머틱 피버(Rheumatic Fever)가 내 병명이었다. 심한 열병으로 후진국형 병이라 불리는 병이었다. 주로 아이들한테 온다고 했다. 마디마디에 염증이 생겨 온몸을 쓸 수가 없었다. 세수하려는데 손마디가 저려오더니 마비 증세가 오고, 팔목과 어깨로 올라오면서 전신이 굳어버린 상황이었다.

'거 봐. 하나님 뜻이 아니잖아. 나는 박사는 아니야.'

그렇게 병원 신세를 한동안 지고 있는데 뜻밖에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GRE도 안 봤는데 말이다. 알고 봤더니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들이 점수에 상관없이 받아주라고 추천했던 것이다.

'박사하라는 게 하나님 뜻인가. 그래도 돈이 없어 못하지. 남편도 못했는데….' 나는 합격통지서가 왔지만 박사 과정을 포기했다. 1주일 뒤 학교에서 이번엔 장학금 통지서가 왔다.

그때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 최대 액수는 등록금의 4분의 3이었다. 내게 날아온 통지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게까지 공부하라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남편은 반응이 영 마뜩잖았다. 정작 공부하러 온 사람은 자신인데 부인이 먼저 하게 됐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이해가 갔다. 나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남편을 안심시켰다.

학교측에 내 의사를 밝혔더니 "그럼 1년 보류해 드릴게요. 지나고 마음 바뀌면 오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정적일 때 아팠던 건 비단 이때뿐이 아니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의 기도 제목이었던 목사 안수. 하지만 나는 하필 안수를 받으러 가야 할 때 또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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