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한창] 맹구와 기독교인 기사의 사진

15세기 유럽 기독교회는 메노나이트(Mennonites)파와 아미시(Amish)파로 분열됐다. 그 원인은 단추였다. 단추는 끈보다 편리하기 때문에 장식품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의견과, 크리스천의 경건성을 해치는 요망한 단추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대립이었다. 그것이 결국 교파 분열로 이어졌다.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를 놓고도 신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복음의 본질에서 한참 멀어진 소모적 논쟁 사례들이다.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교회가 불필요한 일에 너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과 회개운동을 본받자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10만여명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가진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집회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사회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고 있다. 교회의 오만과 사나움이 사람들의 발길을 다른 종교로 돌리게 만들었다. 반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가톨릭에 대한 이미지는 얼마나 좋아지고 있는가.

2005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10년 전보다 1.4% 감소한 861만명이다. 가톨릭은 10년 전보다 74.4% 증가한 514만명에 이른다. 이 정도면 한국교회는 정말 긴장해야 한다. 교회가 힘과 열정을 한 곳에 집중시켜도 시원찮은 판국이다. 열정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허비할 여유가 없다. 몇몇 교단에서 구체적으로 '300만 신자운동'이나 '500만 신자운동'을 펼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비자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사나운 개가 술을 식초로 만든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 때 술을 파는 장씨(莊氏)가 있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친절했으며, 자의 눈금을 속이는 일도 없었다. 술 빚는 실력도 출중했다. 먼 곳에서도 술집을 알아보도록 대문에 빨간 깃발까지 꽂아놓았다. 그럼에도 장씨의 술집에는 손님이 없어, 항상 술이 식초로 변했다.

장씨는 마을의 지혜자인 양천을 찾아갔다. "왜 우리 가게는 장사가 안 됩니까." 양천의 답변. "술집을 지키는 개가 너무 사납게 짖어대는 통에 손님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 최고의 술을 준비해놓고도 맹구(猛狗)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참모를 잘못 기용하면 화를 당한다는 교훈이 담긴 고사다. 요즘 교인들이 덕스럽지 못한 일을 하면서 '나는 ○○교회 장로요' '나는 ○○교회 집사요' 하는 것도 맹구 짓이다. 이런 맹구 신자들로 인해 교회를 찾으려고 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교회 장로인 한 국회의원이 통일교 교주 구순잔치에 참석한 것도 볼썽사납다. 그것은 정치논리를 떠나 장로의 신앙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교인이 맹구 노릇을 하면, 담임목사가 욕을 먹는다. 목사가 잘못하면 예수와 교회가 치욕을 당한다.

요즘 몇몇 교단과 교회의 소모전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기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 한다'는 구명보트 논리와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교회만 돕는다'는 트리지 윤리(Ethics of Trige)만 난무하고 있다. 예수는 배고픈 5000명 앞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이것을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이 중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하고 힘 좋은 다섯 명을 선발해 먹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작은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바로 '사랑의 기적'을 베풀어 5000명을 배불리 먹였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관용이 넘쳐나야 한다. 맹구신자는 교인까지 내쫓는다.

임한창(종교부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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