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고 문제작가 ‘손창섭 살아있다’] 36년만에 찾아간 움막 기사의 사진

산책과 사색, 독서로 소일 식사 제의엔 언제나 사양

제자 노윤기씨가 안내한 과수원 별채 움막은 손창섭이 머물던 36년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농번기 때는 인부들이 머물기도 했으나 농한기 땐 거의 비워두기 때문에 손 선생의 부탁을 받고 즉시 방을 내드렸지요."

움막은 당시 부엌 딸린 방 두 칸이었으나 지금은 중간벽을 허물어 한 칸 방이었다. 그나마 노씨가 10여년 전에 땅을 팔아 주인이 바뀐 채 과수원을 대신 돌보는 70대 농사꾼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둑하고 침침하고 축축한 곳. 그곳에서 손창섭은 혼자 밥을 끓여 먹었다.

"이곳에 기거하던 당시엔 글을 쓰신 것 같지 않아요. 과수원이 넓어서 천천히 산책하면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리거든요. 산책하고 사색하고 책 읽고 하는 게 전부였어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분이었지요."

손창섭이 움막에 들어온 건 1972년 가을. 단풍이 들고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던 무렵이었다고 한다. 바람이 숭숭드는 움막이었지만 그는 불평은커녕 제자 부부에게 늘 송구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말소리도 아주 조용조용했지요. 흑석동에 사실 때 가끔 들려서 문안을 드렸는데 한번은 전화가 걸려왔더군요. "윤기야, 과수원 집이 조용하고 공기도 좋은 것 같은 데 얼마간 살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글 쓰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이곳에 정착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글 쓰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에고이즘이 있는 모양이에요. 선생님은 여기서도 은둔생활을 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런 대단한 분이 이런 시골에서 허허롭게 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지요. 그처럼 성품이 곧은 분은 없을 겁니다."

노씨는 도일 직전 손창섭이 건네고 간 장편소설 '길'(삼중당)을 꺼내 보여주었다. 제자에게 주는 책인데 사인도 작가명도 없이 '노윤기 군(君) 저자 증정'이 전부였다. 역시 손창섭은 사인이 없는 작가였다. 다른 책인 장편 '부부'에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독특한 성격이랄 수밖에 그의 심증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노씨의 부인 지춘화씨는 "움막은 본채에서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데 손 선생은 전기곤로로 따로 밥을 해먹었다"며 "한번은 우에노 여사가 이곳에 들렸을 때 음식에 생선가루를 넣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라며 기억을 끄집어 냈다.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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