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노윤기씨의 증언으로 확인된 해방 직후 연세대 뒷산의 움막과 구리시 과수원 움막은 손창섭이 현대 한국 소설사에서 가장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을 창조해낸 작가임을 다시 한번 상킨다. 손창섭의 문학 세계는 '어두운 방, 뒷골목, 방황, 비 오는 길, 고아, 질병, 가난'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바깥과 소통이 막힌 동굴이나 감옥, 또는 여기저기 파리 똥 자국과 거미줄이 얽혀 있는 창 하나 없는 방, 아니면 대문은 물론 안방과 건넌방, 문짝과 마루에 이르기까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밀폐된 공간이 자주 나온다. 게다가 그의 소설에서는 걸핏하면 비가 내리곤 한다(단편 '비 오는 날')

비로 인한 눅눅한 느낌은이그의 소설을 한결 음습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로 밀어 넣는다. 게다가 이런 음습한 공간 속에서 서식하는 인간들은 한결같이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폐병환자, 간질 병자, 백치, 정신병자, 벙어리 등의 형태로 성치가 않다. 실제로 이와 같은 불구나 온갖 병자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1950년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눈에 띄던 인간 군상이었다. 이는 손창섭이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작가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가 그리는 인간상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인간 자체에 대해 냉소'로 일관되지만 이는 6·25 체험과 피난시절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부산 피난시절 많은 사람이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창섭의 생활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바라크'라고 불리는 가건물에서의 생활은 오물처리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상수도 시설은 상상도 할 수조차 없는 생활이었다. 바라크에서는 어떤 인격적 생활도 불가능했으며, 극한적 상황에 내몰린 절박한 인간으로서의 생명 유지만이 가능했다. 손창섭은 이러한 극단적인 생활에 처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제자가 내준 과수원 움막에 스스로 가두고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자적 시선을 통해 들여보고 있던 작가가 또한 손창섭이었던 것이다. 극한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이 드러내는 추한 면들이 작가의 냉소적 시각에 의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는 손창섭 문학의 일단을 연세대 뒷산과 과수원 움막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정철훈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