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15) 문닫기 직전 교회맡아 당찬 ‘병아리 사역’

[역경의 열매] 신경림 (15) 문닫기 직전 교회맡아 당찬 ‘병아리 사역’ 기사의 사진

감리사님은 나를 우리 도시에 있는 한 미국인 교회로 데리고 갔다. 교인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까다로운 질문들도 많았다. "당신은 한국 여자인데, 한국 여자는 남편을 잘 내조해야 하는 걸로 안다. 남편도 목회자인데 남편 교회를 도와야 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만의 목사를 원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답은 내가 남편 교회 일을 돕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안수를 받은 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받은 겁니다. 월급은 이 교회에서 받지만 내 목회 대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제외시킬 수 없습니다"고 답했다.

나는 목사로서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대답에 그들은 오히려 감동한 눈치였다.

3월께 결정이 났고 나는 7월1일 자로 부임하게 됐다.

부임하던 날 나는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해 설교했다. 그토록 사랑하던 예수님이 돌아가실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여인은 넋을 놓고 슬퍼하지만은 않았음을 전했다. 향유를 예수께 부어 그의 장례를 준비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 여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She has done what she could)"라고 하시며,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전하여져 그가 기념되리라고 극찬하신 걸 주지시켰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영어도 잘 못하고 신학교 졸업한 지도 한달 밖에 안 됐습니다. 미국 온 지도 4년 밖에 안 되어 여러분을 잘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하나는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해보기 전에 못한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주십시오."

성도들은 놀랍게 잘 따라와줬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첫 주만 예배를 드리고 다른 교회로 가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 가정을 빼고 모두가 그대로 교회에 눌러앉았다. 성도는 60여명이었다. 유지하기 어려워 교단에 교회당 열쇠를 반납하며 문을 닫아달라고 했던 교회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감리사님이 1년만 버텨보라 하시고 나를 파송한 것이었다.

내가 동시에 맡은 다른 교회는 성도 수가 30명인 더 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선 처음엔 젊은 사람들을 전도해봤다. 그런데 그들을 전도해보니 한 주일만 교회에 나오고 그 다음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얘길 들어보니 교회학교가 없어 자녀를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게 불만 사항이었다.

성도들의 연령대는 50대 이상이었다. 자녀들은 이미 성장해 품 안에서 떠났고 노후를 설계해야 할 분들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교회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답은 뻔했다. 애들이 없는데, 교회학교를 만들어서 무엇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교회학교가 없으니 애들이 없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그러고는 선생님을 모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선생님을 자원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는 손자 손녀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무작정 일을 벌였고 1년이 지나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는데 36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대성공이었다.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가 잘 운영된다는 소문이 나자 연회에 소속된 다른 목사님들이 비결을 물어왔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결이라곤 두 가지뿐이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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