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필적은 말한다 기사의 사진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필적은 말한다/구본진/중앙북스

안중근 ‘장중한 기상’
이완용 ‘교묘한 필치’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저자 구본진(44)씨의 이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로 조직폭력, 마약, 살인 등 강력범죄 수사를 담당했다.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거창지청장, 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등을 거쳐 현재 법무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력범 전담 검사 출신이 필적을 통해 항일과 친일의 관계를 분석하는 책을 냈다니 다소 뜻밖이다. "나는 작정하고 글씨 수사관이 되기로 했다. 역사 인물들의 글씨에 정신과 인격이 숨겨져 있다면 그것들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싶었다. 특히 항일운동가와 친일파, 이 두 대척점에 선 인물들의 정신세계를, 글씨를 통해 그 의문을 풀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우표 등 수집에 취미를 붙인 저자는 역사 인물의 글씨에 특별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 수집한 글씨 작품만 1000점이 넘는다. 이 가운데 항일운동가 400여명, 친일파 150여명의 글씨를 소장하고 있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학식과 정신 세계, 성격과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는데 이 책은 저자의 소장품을 통해 필적에 담긴 이면을 들여다본다.

"항일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은 떨어진다.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인다."

김구의 글씨는 꾸밈 없는 필치로 졸박한 반면 이완용의 서체는 기교를 많이 부려 교묘함이 엿보이고, 안중근의 서예는 각이 두드러지고 장중해 높은 기상이 느껴지는 반면 을사오적 이지용의 간찰은 규칙 없이 들쑥날쑥해 훼절을 보는 듯하다. 여운형의 지조와 여운홍의 환절, 이승만의 절제와 박영효의 일탈, 이준의 웅혼함과 조중응의 경박함도 글씨를 통해 읽어낸다.

국민에게 유서를 남긴 조병세, 통절한 절명시에 의혼을 담은 황현, 망국을 죽음으로 탄식한 정재건, 음독으로 비분을 나타낸 형조판서 김석진 등 자결한 항일지사들의 글씨는 반듯하고 규칙적이며 상당히 정돈돼 있다. 이들의 글씨를 일반 항일운동가들의 서체와 비교해 보면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인데 마음먹은 것을 곧 행동에 옮기는 결단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최익현의 '거의록', 서상렬의 절필, 의거를 앞두고 가족을 부탁하는 김지섭의 편지, 이갑성의 '삼일운동비사실기' 서문, 박헌영의 암호 편지 등 항일지사들의 희귀 사료들이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 있다. 이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사이고 다카모리 등 침략원흉들의 필적도 동시에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수사관이라는 직업 특성을 살려 연쇄살인범 등 강력범의 필적 분석기를 부록1에 담았다. 또 기교가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필체의 이승만,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서체의 윤보선, 단정하면서도 굳센 느낌의 박정희, 독창적인 글씨체를 구사한 김영삼, 서법에 능하고 연출력이 뛰어난 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의 글씨를 분석한 부록2가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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